네트렙코가 레이디 맥베스에 도전했다. 맥베스(막베토) 역의 젤코 루치치, 반코 역의 르네 파페, 막두프 역의 조셉 칼레야, 지휘 루이지 역시 유명하지만 가장 빛나는 것은 네트렙코다. 원래 이 오페라의 주인공이 거의 레이디 맥베스이기도 하고. 이전에도 한번 메트 라이브로 방송되고 DVD로 출시된 적 있는 프로덕션인데, 그 때도 루치치가 타이틀 롤을 맡았다. 이 프로덕션을 굳이 또 영상물로 발매한 것은 순전히 네트렙코 때문이리라. 네트렙코가 무슨 타이틀을 내든 팔리는 걸 잘 아는 것 같다. 나 같은 놈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니까.


맥베스는 파파노 지휘, 킨리사이드 주연의 로열 오페라 하우스 공연 영상을 한번 본적이 있다. 음악이나 내용이 상당히 흥미로워서 아바도 음반으로 몇번 더 감상했다.


베르디의 초기작 중 그래도 극장 레퍼토리라고 할 수 있는게 나부코와 맥베스일 텐데 두 오페라는 상당히 다르다. 무엇보다 나부코의 리브레토는 최악의 리브레토로 꼽고 싶을 정도이고 맥베스는 셰익스피어 원작 아닌가. 셰익스피어 원작과 리브레토의 비교는 나중에 제대로 다뤄보고 싶다. 아 이야기 나온 김에 말하자면 나부코의 리브레토는 정말 끔찍하다. 개연성도, 캐릭터도 부족하다. 맥베스의 아쉬운 점이라면 맥베스와 레이디 맥베스 이외의 인물, 즉 반코와 막두프와 말콤의 비중이 애매하다는 것이다. 아리아를 부르는 배역은 그만큼의 이야기를 갖추고 있는 게 좋다. 베르디의 후기 중요한 작품들을 보면 이런 점에서 부족함을 찾기 힘들다. 예를 들어 조금 애매한 역인 일 트로바토레의 페란도 같은 경우 작품의 배경이 되는 내용을 아리아로 부르기 때문에 극 중 페란도의 인물이 확실히 정립될 필요가 없다. 충분히 중요한 역할인 에볼리 공녀 역시 첫 아리아는 다른 이야기를 담은 노래를 부르고 인물의 갈등이 확실해졌을 때 감정적인 아리아를 부르지 않는가. 이에 비해 반코가 2막에서 죽기전에 부르는 아리아는 반코라는 인물이 관객에 어필하기 전에 나오지 않나 생각한다. 막두프의 4막 아리아 역시 앞에서 막두프의 비중이 공기와 같아서 인물에 몰입하기 힘들다. 물론 나의 단편적인 감상이다. 관객들이 오페라를 보기 전부터 원작의 캐릭터에 충분히 이해하고 있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이다.


파비오 루이지는 단단히 칼을 갈고 나온 것 같다. 전주곡에서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준다. 메트 오케스트라가 이렇게 날서고 폭력적인 소리를 낼 수 있었구나. 전체적으로 반주에 상당히 힘이 들어가있다. 하지만 네트렙코의 2막 반주에서는 가수가 원하는 템포를 제대로 쫓아가지 못하더라. 

네트렙코는 아주 훌륭하다. 어두운 목소리가 레이디 맥베스에 흑막 같은 느낌을 상당히 잘 살려준다. 물론 전통적인 드라마티코들이 내는 날카롭고 강렬한 소리는 아니다. 하지만 꽉찬 소리로 밀어붙이는 힘이 있다. 아리아의 느낌을 자기 마음껏 잘 요리하며 저음에서는 메조들도 내기 어려울 것 같은 음침하고 거친 소리를 낸다. 연기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타티야나와 레오노라 등에서 보여준 사랑에 빠진 순정파의 이미지는 저리 보내고 완전한 악녀로 거듭난다. 모든 장면에서 성악적으로나 연극적으로나 압도적인 존재감을 보여준다. 


젤코 루치치는 리골레토와 루나 백작을 영상으로 봤었는데 맥베스는 왜인지 모르게 몰입이 안됐다. 말 그대로 그 이유를 모르겠다. 사실 리골레토 때부터 노래는 잘하지만 감흥이 없는 가수라는 인상이었는데 이번엔 조금 더 심하다. 노래를 못하는 건 아닌 것 같다. 노래 어디가 문제인지 아무리 찾으려해도 알 수 없었다. 어쩌면 연기일지도 모른다. 뭐랄까, 다르칸젤로가 항상 똑같은 표정을 짓듯이 루치치의 표정도 크게 변함이 없다. 화가 나거나 공포에 질려도 항상 과장 돼있다고 해야할까. 뭐라고 딱 집어 말해야할지 모르겠다. 킨리사이드의 연기는 어떻게 달랐더라? 아니면 그냥 그의 외모가 맥베스와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른다. 보는 내내 왜 나는 이 맥베스에 감동받지 못하나 그 이유를 찾으려고 애쓰느라 몰입하기 어려웠다. 이 사람이 위대한 바리톤이라고 자기 최면을 걸어봐도 소용이 없었다. 왜 그런지 이유를 찾기 위해서라도 한번 더 봐야겠다.


반코와 막두프는 뭐 그냥 노래를 잘 하더라. 두 사람의 아리아에 별 관심이 없었다.


연출은 아드리안 노블이 맡았다. 빈 슈타츠오퍼 알치나 영상으로 그의 연출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냥 무난했다. 바로크 오페라는 바로크 의상을 입히는 게 음악적 분위기와 더 어울린다고 주장했는데, 이번에는 현대 의상으로 바꿨다. 사실 그게 거슬렸는데, 다른 장면은 모두 괜찮지만 마녀들의 장면이 너무 거슬렸다. 그냥 가십거리에 목말라있는 아줌마 부대 처럼 묘사했는데, 첫인상은 '정신없다' 였다. 음악은 신비스럽고 약간은 조심스러운데, 무대 위의 이미지와 잘 맞지 않더라. 마농 레스코도 그렇고 합창단의 화려한 현대 의상에 거부반응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3막의 무대 장치들은 괜찮았는데, 그걸 어떻게 보여주든 별 감흥은 없을 것 같다. 4막 첫 합창 때 막두프가 자기 가족의 소식을 편지로 전달 받는데, 뒤이어 나올 막두프의 아리아를 예비하는 점은 좋지만 합창단이 노래하고 있는 순간에 막두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춰서 그만큼 잃는 것도 많은 선택 같았다. 피날레에서 막두프가 행복하지 않은 것, 반코의 아들이 돌아온 것으로 묘한 긴장감이 형성되는 것은 마음에 들었다.


메트 관객들은 역시 박수를 치고 브라바를 외치기 위해 오페라 극장에 오는 것 같다. 반코의 아리아가 끝나고 반주가 계속 되든지 말든지 브라보를 외치고 박수를 친다. 네트렙코가 아리아를 끝내면 흡사 아이돌 콘서트에서나 들을 것 같은 익룡 스타일의 비명도 나온다.


기억나는대로 후기를 써가다보면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별 발전이 없는 것 같다. 이 공연에 대한 인상을 요약하자면 '네트렙코의 성공적인 레이디 맥베스 변신' 이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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