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 아트 떨이기간에 구입했다. 이제 슬슬 벨리니 공포증을 극복해야하지 않을까하고 시청했다.


오페라를 크게 두 개로 나눈다면 두 연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극 중인가 극 전인가로 나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언젠가 쓴 것 같다. 벨리니 카풀레티와 몬테키와 구노 로메오와 줄리에트의 차이는 바로 이 점에 있다. 구노의 오페라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에 치중했다면 벨리니는 두 가문의 대립에 더 초점을 맞췄다. 이건 뭐 카풀레티와 몬테키를 검색하면 아마 제일 처음 나오는 내용 중 하나일 것이다.


하지만 솔직히 여느 벨리니 오페라가 그렇듯이 내용이 무슨 상관이 있냐 싶다. 리브레토는 그저 거들 뿐, 어차피 모든 이 작품은 음악에 치우쳐있다. 극 중에서 사건이라고 할만한 것도 별로 없다. 로메오가 변장하여 줄리에타를 찾아오지만 줄리에타는 가족을 떠날 수 없다면서 갈등하고 결국 흐지부지. 줄리에타가 로렌조의 약을 먹고 죽는 시늉을 하고 로메오는 충격먹고 독약을 먹고 죽는다는 내용이 전부다. 여기에 테발도가 애매하게 껴서 노래 몇곡을 불러준다. 개인적으로 로메오와 테발도가 줄리에타의 죽음을 듣고 부르는 이중창이 음악적으로는 가장 아름다웠다. 이 곡도 극의 내용 상으로는 참 뜬금없고 괴이하다.


이처럼 벨리니 오페라는 극으로서의 긴장감이나 흥미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상당히 떨어진다. 음악 역시 극적 긴장감을 고조시키는 역할과는 거리가 멀기도 하고. 때문에 각각의 노래의 아름다움만이 거의 유일한 감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문제는 이 공연의 경우 연주가 나쁘다는 것이다. 오직 디도나토만 잘한다. 그 전까지 디도나토가 딱히 슈퍼스타 급의 가수라는 느낌은 받지 못했는데 이 공연을 보면서 디도나토가 노래 표현력이 상당히 좋다는 걸 실감했다. 군계일학이 무엇인지 보여준다. 


줄리에타 역의 니콜 카벨은 심한 비브라토와 특유의 목소리 때문에 듣기 좀 괴로웠다. 찾아보니 2005년 카디프 싱어 우승도 했다는데 나는 노래를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듣고 있기가 싫을 정도였다. 마치 플레밍을 듣는 것 같았는데, 역시 사람 취향은 다양한 법이다. 알고보니 비야손, 네트렙코의 영화버전 보엠에서 무제타를 불렀었다. 그때는 이렇게 심각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거기다 시종일관 심하게 과장된 표정도 너무 불편하다.


사이미르 피르구는 바로 전에 본 로저 왕에서 목자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내서 기대를 했는데, 역시 돋보이진 못했다. 로저 왕에서는 리릭의 목소리로 스핀토의 느낌이 나게 불렀는데, 여기서는 벨 칸토라는 걸 의식하고 아름답게만 부르려고 하는지 별로였다.

메트 반지에서 알베리히 역을 맡았던 에릭 오웬스는 바그너보다 이탈리아 오페라에 훨씬 잘 어울리더라.


전체적으로 가수들의 노래가 구린 건 지휘자 탓도 있지 않을까. 지휘를 맡은 리카르도 프리차Riccardo Frizza는 전체적으로 귀엽고 깜찍하기만 하고 재미가 실종된 반주를 들려준다. 


연출은 뱅상 부사르가 맡았다. 툴루즈 극장의 라 파보리트를 맡았던 연출가인데, 무대를 보고 나서 바로 그 라 파보리트의 무대가 생각났을 정도로 흡사한 스타일이다. 블루레이 표지에 의상 디자인을 라크루아가 맡았다고 스티커를 붙여놓으면서 까지 광고를 했길래 이 사람이 유명한 사람인가 싶었다. 최근에 의상이 감탄할 정도로 뛰어났던 건 파보리트의 의상이었는데, 알고보니 그때도 뱅상 부사르와 호흡을 맞췄었다. 패션에 조금도 관심이 없기에 크리스티앙 라크루아가 얼마나 유명한 패션 디자이너인지 전혀 모르다가 검색을 통해 알게 되었다. 최근에는 오히려 패션 계보다 오페라 의상에 더 관심을 둔다고 한다. 두 공연 모두 의상의 클래스가 다르다는 것을 뼈저리게 실감할 수 있다. 무대가 미니멀하기 때문에 의상이 곧 연출이라고 할 수 있다.



공연 영상이 다 끝났을 때 이렇게 해방감을 느낀 적도 오랜만이다. 내가 정말 벨리니랑 이렇게 안맞나 싶기도 하다. 그래도 루이지의 음반을 들어보면 훨씬 괜찮은 걸 보니 공연이 구린 탓이 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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