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살카 예습을 위해 뉴질랜드 어떤 대학원생이 쓴 석사 학위 논문을 읽고 있는데 상당히 흥미롭다. 학위 논문인 만큼 130여 페이지의 아주 긴 논문이라 루살카의 역사나 음악, 인물 심리 분석이 매우 자세하게 나와있다. 언젠가 시간이 되면 블로그에 소개해보고 싶다.


여튼 논문을 읽다가 1983년 잉글리시 내셔널 오페라의 데이빗 파운트니 연출 프로덕션이 루살카 역사에 굉장히 중요한 공연이었다는 사실을 읽게 되었다. 1980년대면 루살카가 체코 바깥에선 듣보 취급 받던 시절인데, ENO의 공연은 루살카가 유럽 극장의 표준 레퍼토리로 자리잡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한 파운트니의 연출은 루살카를 일종의 심리극으로 변환시켜 루살카 연출에 중요한 기준을 제시했다.


마침 이 연출이 최근 아트하우스 Legendary Performance 시리즈로 upscale 블루레이로 출시됐길래 당장 구입했다. 이 시리즈의 화질은 영상 원본에 따라 크게 다를 텐데 이 공연은 1986년에 쵤영된 거라 매우 안좋다. 거기다 자막 까지 디비디 화질 그대로라 뭔가 속은 기분이 들었다.


연주는 괜찮은 편이다. 루살카는 무난하고 왕자 역의 존 트렐리븐John Treleaven이 상당히 빛난다. 트렐리븐은 리세우 반지에서 지크프리트를 맡았는데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콘비츠니의 연출로 유명한 로엔그린 역시 영 별로였다. 비브라토 폭이 너무 크다고 해야할까, 나이든 헬덴테너에게 나타나기 쉬운 단점이 여실히 드러난 목소리다. 그런데 이 루살카 공연에서는 아주 단단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예치바바 역을 맡은 앤 하워드Ann Howard 는 찌르는 듯한 고음과 강렬한 연기를 선보여 상당히 인상깊었다. 최근 본 루살카에서 예치바바가 다들 거기서 거기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이 공연을 보며 상당히 놀랐다.

보드닉은 이렇다할 인상을 주진 못했다.


지휘는 1979년에 32살의 나이로 ENO의 감독을 시작한 마크 엘더가 맡았다. 일단 녹음이 안좋은 점도 있으나 전반적으로 체코의 느낌이 많이 사라지고 평이한 반주가 되었다.


연출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지만 꽤 흥미로웠다. 파운트니는 이 오페라를 루살카의 상상, 혹은 내면 속에서 일어나는 일로 표현한다. 공연 연도나 연출 컨셉이나 하리 쿠퍼의 전설적인 바이로이트 화란인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세부적인 내용이 전체 컨셉을 잘 뒷받침 하냐고 묻는다면 글쎄. 딱 보면 이해가 가는 하리 쿠퍼의 연출과 달리 파운트니의 연출은 전체 컨셉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진 않다.

그래도 인상적인 장면이 있었는데, 보육원 사감 처럼 등장하는 예치바바가 루살카의 다리를 묶고 있는 붕대를 풀어내는 장면이 루살카의 행복과 슬픔이 교차하는 음악과 매우 절묘하게 맞아 떨어졌다. 나름 코믹 캐릭이라고 넣어둔 사냥터지기와 요리보조의 장면을 웃음이 나오게 연출한 것 역시 좋았다. 


사실 이 공연의 가장 큰 특징을 꼽으라면 아마도 체코어가 아닌 영어로 공연된다는 점을 이야기해야 할 것이다. ENO는 모든 프로덕션을 영어로 공연한다. 언어를 번역하여 올리는 것이 20세기 중반 까지도 흔히 있는 일이었지만 요즘은 찾아보기 힘든 게 사실이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예전에 모두 한국어로 노래했지만 요즘은 정규 오페라의 경우 그런 공연을 거의 찾기 힘들지 않은가. 

난 개인적으로 번역해서 노래하는 것에 찬성한다. 노래와 가사가 밀접하게 붙어있고, 가사의 발음 역시 노래의 일부라는 점은 굉장히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노래하는 내용의 전달이다. 여러 오페라 언어들을 공부하면서 느낀 거지만, 내가 아는 말이 나올 때와 아닐 때의 집중도는 완전히 다르다. 자막을 보고 이해하는 것과 가수가 부르는 가사 자체에 함께 공명하는 것은 다른 차원의 경험이다.

마찬가지로 아직 체코어를 전혀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영어로 부르는 것이 더 가사에 집중하기 좋다. 달에게 부르는 노래의 경우, 내가 체코어 가사를 어느 정도 익혔기 때문에 체코어로 들었을 때 단어가 들리는 편이긴 하지만 영어로 부르는 걸 들을 때 훨씬 더 집중할 수 있었다. 진짜로 루살카와 소통하고 있는 느낌이라고 해야할까.

물론 어색함도 있다. 보드닉이 끊임없이 반복해서 노래하는 상징적인 단어 Beda를 Sorrow라고 부를 때 발음의 어색함이라든가, 내가 들어왔던 것과 다른 소리가 나는 것 역시 어색하긴 하다. 하지만 단점이 있는 만큼 장점도 충분히 많다.

간혹 이탈리아 오페라를 레치타티보만 우리말로 바꿔서 공연하는 경우가 있는데,  레치타티보는 어차피 자막 보고 내용을 이해하면 되는 부분이다. 노랫말을 우리말로 불렀을 때 생기는 효과가 중요하다.


좀 뜬금없는 말이지만 국립오페라단에서 순수 국내 제작진으로 루살카를 초연한다는데, 그렇게 '순수 국내 프로덕션'이란 타이틀을 얻고 싶었으면 한국어로 번역이나 하지 그랬나 싶다. 한국어가 일반적으로 노래하기 더 어렵다는 점은 있지만, 아마 관객의 1%도 이해하지 못할, 심지어 제작진 중에서 딕션 코치를 제외하곤 체코어를 아무도 자연스럽게 하지 못할텐데 체코어로 공연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작품의 원본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그렇게나 중요하면 체코 사람 가져다 쓰지.

어차피 번역 오페라가 주류가 될일은 전혀 없겠지만, 그래도 ENO나 베를린 코미셰 오퍼 처럼 자국어로 공연하는 오페라 역시 옵션으로 존재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요약하자면 사람을 확 사로잡는 부분은 별로 없지만 나름의 가치와 매력을 가진 영상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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