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범작.


쌓여있는 블루레이를 간단히 분류해보니 내가 한번도 안본 작품의 영상물이 한번이라도 본 작품의 영상물보다 한참 더 많았다. 대부분 이탈리아 벨칸토 오페라거나 현대 오페라다. 새로운 작품을 보는 것과 익숙한 작품을 보는 것 사이에 균형이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새로운 오페라를 골랐다. 로시니 오페라 페스티벌의 공연 내용이 항상 괜찮기 때문에 꽤 많이 사뒀는데 아직 보지 못한 게 많았다. 브루스키노 씨(Il Signor Bruschino) 역시 그 중 하나다.


브루스키노 씨는 90분 정도 길이의 단막 오페라다. 플로르빌레와 소피아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소피아의 후견인인 가우덴지오는 이미 소피아를 브루스키노 라는 남자와 결혼할 것으로 정해버렸다. 플로르빌레는 술에 빠져 외상빚을 지고 사는 브루스키노를 여관 주임의 도움을 받아 감금(!) 시키고 스스로 브루스키노를 사칭하여 가우덴지오를 찾아간다. 자기 아들이 술에 빠져 산다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온 아버지 브루스키노는 플로르빌레가 자기 아들이라고 나타나는 걸 보고 경악한다. 브루스키노는 플로르빌레를 처음보는 사람이라고 주장하지만 가우덴지오는 그저 아버지가 아들이 술에 빠져 살고 빚이나 지는 걸 보고 못마땅해 연을 끊으려고 모른척 하는 것 쯤으로 생각한다. 이건 내 아들이 아니다라고 주장하는 브루스키노와, 아무리 아들이 못난 짓을 많이했다고 부자지간의 연을 끊으려는 거냐고 타박하는 가우덴지오의 설전이 오페라의 클라이막스다. 브루스키노는 우연치 않게 사건의 자초지종은 물론 플로르빌레가 사실 가우덴지오의 숙적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대로 가우덴지오를 골탕먹일 속셈으로 브루스키노는 플로르빌레와 소피아의 결혼을 서두르고, 결국 속고 속이는 일련의 사건이 해피 엔딩으로 끝난다. 



내용 자체는 흥미롭지만 전체적으로 레치타티보가 너무 길고 중창의 비중이 적고 아리아가 많아 단조롭다는 것이 큰 단점이다. 음악은 역시나 로시니 스럽지만 이 작품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별한 점은 부족하다. 재미있는 장면도 있지만 어떤 로시니 오페라를 봐도 이 정도는 다 나오는걸. 찾아보니 역시나 로시니의 매우 초기작 중 하나였다.

 서곡에서 처음듣는 타악기 소리가 들려서 뭔가 싶었는데 세컨 바이올린이 보면대에 달린 조명을 활등으로 때리는 소리였다. 로시니가 지시한 사항(당시에는 촛대)인데 초연 때 이해할 수 없는 짓이라는 혹평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에 연주 자체도 썩 훌륭하지 못하다. 플로르빌레 역을 맡은 David Alegret은 깔끔하거나 아름다운 목소리와는 거리가 멀다. 불안정한 비브라토와 합쳐져 좀 바보같이 들린다. 틈만 나면 지휘자를 보러 눈을 돌리는 점도 눈에 거슬린다. 그나마 가우덴지오 역의 카를로 레포레Carlo Lepore가 괜찮은 편이고 다른 가수들은 수준 이하다.


연출은 조금 특이한 편이다. 전체 무대를 로시니랜드 라는 테마 파크로 바꾸었고 로시니 시대의 의상으로 분장한 직원들이 로시니랜드 안에서 펼치는 공연처럼 묘사한 것이다. 참신해보이긴 하지만 실제로는 효과도 없고 별다른 재미도 없다. 연출을 맡은 테아트로 소테라네오Teatro Sotterraneo(지하의 극장)는 다섯명의 연출가로 이루어진 연출 그룹인데, 인터뷰 할 때 다섯명 다 Stage Director로 소개돼 처음에는 뭐지 싶었다. 오페라를 맡은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그 말을 듣고나니 공연 중에 음악의 느낌을 잘 살려주는 연출이 별로 없었다는 생각도 든다.


작품 자체나 연주나 그다지 추천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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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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