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이 슈테판 헤어하임의 연출, 다니엘레 가티 지휘로 뉘른베르크 명가수를 올렸다. 전에도 한 번 보았지만 글라인드본 명가수 공연 예습을 위해 다시 보았다. 


처음 이 연출을 보았을 때는 헤어하임 치고 약하다는 생각을 했다. 내가 헤어하임에 거는 기대가 항상 높기 때문이었을까. 생각보다 평이했고 그의 다른 연출만큼 압도적인 매력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두 번째 보는 지금, 이 연출을 내가 너무 과소평가했구나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다. 


일단 헤어하임 특유의 환상적인 시각적 연출이 돋보인다. 잘츠부르크 축제대극장의 경우 가로로 굉장히 길기 때문에 공간활용이 쉽지 않은데, 헤어하임은 이 공간을 적절하게 잘 활용한다. 여기에 무대의 특정 부분을 클로즈업해서 마치 거인국에온 사람들 마냥 1막과 2막을 연출하는 것도 특별한 효과를 준다. 특히 1막 전주곡에서 1막으로 넘어갈 때 반투명 커튼을 치고 프로젝터로 무대 모습을 그대로 영사하다가 클로즈업하는 장면은 현실에서 가상으로 넘어가는 아주 훌륭한 전환이다.


마치 인셉션 마냥 이야기가 여러가지 계층으로 존재한다. 현실 세계는 작스의 작업실이다. 1막의 배경이 되는 건 작스가 곡을 쓰던 책상이다. 2막의 배경이 되는 건 여러가지 잡동사니가 놓여있는 작스의 창고와 같은 공간이다. 처음 볼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배경의 선택 역시 중요한 의미가 있다. 1막의 중심은 예술에 관한 이야기다. 다비드가 마이스터징어 노래의 규칙을 설명해주고 마이스터징어들끼리 노래경연대회의 심사를 어떻게 할 것인지 의논하며 발터의 노래를 평가한다. 결국 음악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막이기 때문에 작스가 곡을 쓰는 책상 위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반면 2막은 인물의 내면에 관한 이야기다. 작스와 에파의 은밀한 대화 처럼 에파에 대한 작스, 베크메서, 발터의 욕망이 막의 주제가 된다. 헤어하임이 연출한 2막의 배경인 작스의 공간은 무의식을 상징하는 듯 하다. 끝을 알 수 없는 듯한 깊이, 또한 여러가지 잡동사니들이 나열돼있다는 점이 무의식의 공간을 암시한다. 3막에서 배경이 다시 실제 작스의 집으로 옮겨왔을 때에도 베크메서가 집의 출입문이 아닌 무의식 창고에서 나오는 점 역시 연출의 결말을 암시하는 부분이다.


인물의 성격 역시 확실하게 강조해낸다. 발터는 1막에서부터 걸핏하면 칼을 들고 화를 낸다. 사실 대본에서도 발터의 폭력적인 면은 1, 2막에 걸쳐 잘 드러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헤어하임의 연출은 상당히 설득력있다. 또한 작스와 에파의 관계 역시 훨씬 더 강조된다. 작스의 집에는 사과를 든 에파의 초상화가 놓여져있다. 3막에서 발터는 작스에게 마이스터징어 노래의 규칙을 누가 만들었냐고 묻고, 작스는 인생에 지친 마이스터들이 젊은 날의 사랑을 간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발터는 이에 반문한다. 봄날이 지나간지 오래되었는데 어떻게 그 이미지를 가질 수 있죠? 바로 이 대목에서 발터는 작스의 집에 있는 에파의 초상화를 보고 작스의 마음을 의심한다. 

3막 4장, 작스와 에파의 장면에서는 둘의 관계를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에파가 발터를 보고 탄성을 내지른 다음, 작스가 모든 걸 포기하고 독백하는 장면에서 작스는 정말로 사랑에 슬퍼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준다. 에파 역시 작스의 집에 놓인 자신의 초상화를 발견하여 자기에 대한 작스의 마음을 깨닫고 오열한다. 2막에서 에파가 작스에게 하는 말은 정말로 작스에게 마음이 있거나, 일종의 가벼운 장난으로 볼 수 있는데, 헤어하임은 에파가 자신의 장난이 작스에게 얼마나 가슴아픈 일이었으지를 깨닫는 것으로 처리한다.


그 외에 헤어하임이 항상 써먹는 거울은 등장하지 않지만 다른 방법을 활용했다. 1막에서 작스가 회의 중에 '1년에 한번은 대중들에게 우리 예술을 평가받아야한다'고 말할 때 모든 마이스터징어들이 객석을 쳐다봄으로써 관객들을 이야기에 끌어들인다.


개인적으로 명가수 연출을 보고 감탄한 것은 카타리나 바그너의 바이로이트 연출 밖에 없었는데, 헤어하임의 연출 역시 이에 뒤지지 않는다. 작스=베크메서의 꿈이라는 헤어하임의 전체적인 해석보다 카타리나 바그너의 '발터 타락설'이 조금 더 참신하고 흥미롭지만 헤어하임의 연출에는 곳곳의 세세한 디테일이 살아 숨쉰다. 그 외에 맥비커의 글라인드본 연출은 맥비커의 연출 중에서도 심심한편이다. 


노래 역시 훌륭한 편이다. 작스 역의 미하엘 폴레는 노래와 연기를 모두 겸비한 베테랑이다. 가사의 표현력이 살아있고 목소리도 안정적이라 마음에 쏙 든다. 내가 좋아하는 유형의 바그너 가수다. 3막 Wahn! 역시 작스의 마음을 잘 풀어낸다. 베크메서를 맡은 마르쿠스 베르바는 피에라브라스에서 직접 본 적이 있는데, 가창이 압도적이진 않지만 연기를 잘 해내는 가수다.

발터 역의 로베르토 사카는 훌륭한 발터가 몇 없는 요즘 괜찮은 노래를 들려준다. 에파 역의 안나 가블러는 확실히 빈약한데, 이런 가수가 글라인드본과 잘츠부르크에서 캐스팅 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요즘 바그너 가수가 얼마나 기근인지 알만하다. 포그너 역의 게오르크 제펜펠트는 기대하는 만큼 훌륭하다. 다비드 역의 페터 존은 상당히 괜찮은 리릭 테너이지만 바그너 슈필테너의 촐랑맞은 맛이 조금 아쉽다. 


가티의 지휘는 전체적으로 가볍고 저돌적인데, 오케스트라를 이끌어나가는 힘은 좋지만 바그너와 썩 어울린다는 느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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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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