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2일 일요일. 공연을 보고 갤에 남긴 글이다.

글을 다시 손대긴 힘들 것 같다. 프로하스카의 목소리가 빛나는 밤이었고, 위그모어 홀의 뛰어난 명성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하필 프로하스카가 부른 곡을 제대로 체크하지 못해 엉뚱한 곡을 예습해 간 것이 큰 아쉬움으로 남았다. 

위그모어 홀은 건물들 사이에 평범하게 끼어있다. 잘 몰랐으면 공연장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것 같은 비주얼이다.


로비 역시 상당히 좁고 단아하다. 위그모어 홀 라이브 음반을 파는 코너가 있고 팸플릿을 비롯해 기침용 캔디등을 판매한다. 



커튼콜 사진.



런던 첫날. 원래 공항에서 일찍 빠져나오면 소극장에서 하는 카발레리아 루스티카나/팔리아치를 보러가려고 했는데  찾는게 늦어져서 실패. 그냥 여유있게 숙소들려서  놨두고 위그모어 홀로 향했다.



프로그램

슈베르트: Salve Regina A장조

베베른: Schmerz immer Blick nach oben

페르골레시: Salve Regina C단조


슈베르트: 옥텟 D803


뭔가 살짝 짬뽕된 듯한 프로그램과 출연진.

1부에는 현악 반주로 프로하스카가 30여분 정도의 프로그램을 부르고 2부에는 슈베르트 옥텟을 연주했다.



메인 관심사는 당연히 요즘 핫하다는 안나 프로하스카

이상하게도 정작 들어본   영상물로 나올 엑상 프로방스의 알치나 정도밖에 없었다. 바렌보임 최근  조반니에서 체를리나로나왔는데 이것도 사놓고 아직 못보았다.


위그모어 홀의 명성은 워낙 대단하다보니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정말 매일 같이 좋은 공연이 있는데, 이번 한주간만 해도 안나 프로하스카, 티베르기엥, 파벨 하스 콰르텟, 미아 페르손이 출연했다. 거기다 몇몇 공연은 35 이하에게 전좌석을 5파운드에 판매하는데,  공연도 5파운드에 매우 좋은 자리에서   있었음.


로비에 가보니 프로그램을 파는데  설명은  페이지 정도 밖에 안되고  위그모어홀 관련 광고다. 이러고 5파운드를 받으니상당히 창렬하지만 티켓값이 5파운드였으니..



1 프로하스카는 정말 경이로운 노래를 들려줬다. 물론 전날 예당에서 재앙급의 노래를 들은 탓도 있겠지만, 모든 프레이즈 마다 관객을 이렇게 끌어들이는 노래라니. 섬세함의 격이 달랐다. 모든 음에 디폴트로 비브라토를 넣는게 아니라 프레이징에 어울리게 비브라토를 넣으며 표현의 폭을 극대화함. 음표 하나 안에서도 뚜렷한 방향성이 느껴질 만큼 프레이징을 컨트롤 했기 때문에 섬세한 변화에  정신을 집중하며 따라가게 만드는 노래였다. 목소리가 아름다운 가수는 많겠지만 이렇게 소리를 다채롭게 빚어내는가수는 정말 흔치 않은  같다. 당장이라도 끊어질  같은 가느다란 거미줄로 예술을 하는 느낌이랄까. 특히 두번째  베베른의경우 노래보다는 나레이션에 가까운 느낌인 곡인데, 단어 하나를 발음해도  모음의 음색을 섬세히 조절해가며 절망적인 고통을 섬뜩하게  표현해냈다.


페르골레시의 살베 레지나에서는 조금  오페라 같은 격한 감정도 숨기지 않고 드러냈는데, 악장 간의 대비가  나타나 관객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했다. 프레이징을 따라가다보면 극도의 몰입감에 정신을 못차릴 정도


복장도 그렇고 진짜 여신 강림해서 천상계의 음악을 들려주고 퇴장하심.



사실 프로하스카가 정말 클라스가 다른 음악을 들려주고 퇴장했기 때문에 2부는 조금 김이 빠지는 느낌이 있었음.

슈베르트 옥텟은 예전에 동아리 사람들끼리 해보자고  짜서 연습해본 곡이었는데 너무 빡세서 두번이나 연습하고 쫑냈으려나.여튼 나름 추억이 있는 곡인데 전악장을 듣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공연 제목은 베로니카 에베를레와 친구들이지만 사실 친구들이 아니라 이모, 삼촌이라고 하는게 맞지 않았을까. 에베를레만 패기넘치는 신성이고 나머지는 실내악이나 오케스트라 경험이 아주 많은 베테랑들이다. 세컨 바이올린 Malin Broman 스웨덴 라디오 심포니 악장을 했고 비올리스트 Danusha Waskiewicz 아에르데 우승하고 베필 수석 먹고 아바도와 함께 오케스트라 모차르트로 옮겨서 수석을 맡았는데, 루체른이나 브란덴부르크 같은 영상에 나와서 다들 많이  연주자일듯. 그외에 클라리넷은 파리오케스트라 수석, 호른은 베를린 방송향 수석이었다



2 슈베르트 옥텟은  특이한 연주였다. 요약하자면 천방지축 외동딸이 뛰노는 모습을 이모랑 삼촌들이 오냐오냐 따라가며 커버해주는 느낌이랄까.

에베를레는  곡을 바이올린 협주곡 마냥 연주하는  했다. 퍼스트 바이올린 비중이 상당히 높고 기교적인 패시지도  나오는편인데, 이까짓거  테크닉으로  해결해주겠어라는 모습이었음. 아쉽게도 패기만으로 슈베르트를 소화해내기는 어려운  사실이다.


1악장은 그럭저럭 무난한 시작이었다. 대체로 클라리넷이 이끌어나가는 편인데 너무 조심스럽다는 생각까지 들정도로 굉장히 부드러운 소리를 들려줬다. 호른은 아주 어려운 멜로디 솔로를  끝마치더니 뒤이어 나오는 두번의 살인적인 도약을  실패해새삑사리를 냈는데, 도돌이표로 반복할 때는 깔끔하게 클리어했다.  부분  틀리고 나서 연주자도 안도의 한숨을 내뱉더라ㅋㅋ 악장에서부터 에베를레의 선율 처리가 조금씩 걱정이 됐다. 클라리넷과 주고받는 부분이 많은데 클라리넷이 섬세하게 프레이징을 처리하는데 비해 에베를레는 전반적으로 날선 소리로 선율 처리가  무심했다. 그래도 제시부 코데타에 나오는 포르티시모합주력 만큼은 아주 훌륭해서 뛰어난 오케스트라 소리를 듣는 기분이었다.


에베를레의 단점이 가장 부각된  2악장이었다.  악장은 슈베르트의 멜로디 자뻑이  드러나는 악장으로 같은 멜로디를 무던히도 반복하는 구조다. 거기다 패기만으로 해결할  있는 패시지가 하나도 없는 악장이기도 하다. 프로하스카가 1부에서 천상계프레이징의 클라스를 들려줬는데 에베를레는 실론즈급이랄까..  그렇다고 에베를레의 테크닉이 완벽한 것도 아님. 보잉 컨트롤이 안되서 소리가 깨지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대로 3악장 스케르초에서는 다들 물만난 고기 처럼 뛰놀더라. 투티에서 다들 악기 박살낼 기세로 연주한다. 거기다가 이미 맥시멈에 다다른  같은데 거기서 부스터를 밟아서 한계를 뛰어넘는 음량을 들려줬다. 돌아와서 음반을 들으니까 너무 심심하게 느껴질 정도. 진짜 에너지를 폭발시키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연주였음. 그렇기 때문에 피아노 파트에서 대조가 훨씬  커졌고, 이때여러 마디를 걸쳐 생기는 크레셴도 파트에서는 에베를레의 프레이징이 굉장히 자연스러웠다. 3악장만 씬나서 죽어라 연습한 같기도 하다


4악장은 다시 2악장 처럼 에베를레의 나쁜 습관이 자주 나오는  했다. 4악장 변주에서 빠른 패시지가 나오면 자기 손가락 돌아가는 거에 심취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래서 전반적으로 목관과의 밸런스가 심각하게 무너지는 부분이 자주 나왔다. 이목관이 겹붓점으로 선율을 변주하는 2변주는 내가  좋아하는 부분인데 에베를레는 자기 파트를 최대한 거칠고 멋드러지게 연주했기에 목관의 선율이 묻힐 정도였다. 3변주에서는 퍼스트 바이올린이 두마디에 한번씩 상향 스케일이나 아르페지오를 하는데 전형적인 장식 패시지이지만 이걸 다들 나한테 집중해!! 내가 개멋진 패시지를 연주하고 있단 말이야!!” 라고 외치는  연주했다. 템포가 빨라지는 7변주에서는 진짜 협주곡 패시지 처럼 미친듯이 화려하게 연주했다. 이런  튀지 않게 절제해가면서 반주로  소화해내는  실내악의 미덕일텐데 역시나 밸런스는 폭망.. 


5악장은 협주곡 같은 패시지가 없어서인지  정상적으로 돌아왔다.


대신 6악장은 에베를레의  길잃은 패기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알레그로 파트를 베토벤이나 브람스 교향곡의 피날레 악장이라도 되는  처럼 승리의 행진곡 풍으로 연주했다. 중간에 퍼스트에 비르투오소적인 패시지가 나오는데 진짜  부분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휘몰아 치더라. 슈베르트가 살아있었으면 분명 퍼스트한테 화려한 패시지  달라고 협박했을 거다. 역시 기대했던대로 마지막에 코다에서 달리는 거는 자기 전공이라고 짜릿하게 해냈음.



정규 실내악 단체에서는 절대 기대하지 못할 기상천외한 연주스타일이었음. 에베를레가 말아먹은 만큼 잘해낸 것도 있으니.. 이렇게 공격적인 슈베르트를 듣기도 어려울 듯. 



마지막에 프로하스카가 나와서 출연진 아홉명이 같이 연주한 곡이 없으니 앵콜로 따로 편곡했다며 슈베르트의 징슈필 공모자들’(Die Verschworenen)  “Ich schleiche bang und still herum” 노래해줌. 1부곡에 비해 대체로  감정적으로 불렀는데,역시 훌륭하긴 했지만 1부곡이   낫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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