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3일 월요일.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본 첫 공연이었다. 내가 있는 기간 동안 오페라는 외디프 하나만 공연하고 있었기 때문에 선택의 여지도 없었다. 


내부 로비는 생각보다 좁고 수수하다. 같은 로열 달고 있는 테아트로 레알에 비하면 심심한 편.



대신 오페라 하우스 건물 옆에 붙어있는 저 아치형 건물이 꽤나 세련되게 예쁘다. 여기에는 식음료 바가 있어 공연 시작전이나 인터미션에 사람들이 많이 찾는다.



공연장 내부. 



커튼콜때 찍은 사진. 잘 안보이지만 내가 앉은 자리는 시야 제한이 상당했다. 




오늘은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 갔다.


출국 전에 뭔가  티켓을 구할 수 있을거라 기대하고 예매를 안하고 느긋하게 기다렸지만 결국 어떤 할인도 없고 제일  좌석은 60파운드 가량..

그래서 그냥 아침 10시에 데이티켓을 사러 갔다. 늦을 까봐 9 반쯤 도착했는데 내가 1빠더라. 도쿄에서는 7시부터 기다리는데 말입니다확실히 외디프가 인기가 없구나 싶었다. 데이티켓은 40여장으로 서클 사이드 쪽이나 앰피시어터 제일 뒷자리 등 상당히 구린 좌석들만 판다. 가격이 싼 데에는 이유가 있는 법.




오늘은 외디프(오이디푸스) 공연 첫날이었다원래 브뤼셀  모네 극장에서  푸라 델스 바우스가 연출한 프로덕션을 가지고 왔다.



외디프는 처음 듣는 오페라였지만 내가 런던에 있는 동안 로열 오페라 하우스에서 공연하는 오페라가 이것 뿐이라 딱히 선택의여지가 없었다여행 가기로 정해지고 나서부터 예습하겠다고 음반도 들어봤지만  와닿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리아나 선율 중심의 오페라가 아니기 때문에 극의 상황을 모르면  감흥을 받기 어렵다.

임슬프에 보컬 스코어가 있길래 가기 전에 악보를   보고   있었다. 길렌 지휘의  슈타츠오퍼 실황 음반으로 예습했는데커트가 상당히 많아 악보를 쫓아가는데  애를 먹었다이안 홉슨이 지휘한 미국 초연 음반은 확실치 않지만 아마 커트가 없는  같은데, 연주 퀄이 길렌에 비할 바가 못된다.



에네스쿠가 루마니아 작곡가지만 파리에서 공부하고 활동했기 때문인지 오페라는 불어로 돼있다.

영어 리브레토라도 구해보려고 했는데 못구해서 그냥 스코어에 있는 불어를 읽는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이야기 자체가 유명하니까 따라가기 어렵지 않았다. 오히려 공연장에서 자막 보느라 놓치는 부분이 많이 생겼음.



오이디푸스 이야기는 그리스 비극 중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큼 비극적인 이야기다. 악보를 보며 음악을 듣는데 ' 슬픈 운명을 보고 있자면 눈물흘리지 않을  없다'라는 상투적인 표현이 자연스레 떠오를 정도다. 리브레토는 그리스 비극을 다룬 중에서도 특히 훌륭한 편이다.  4막인데, 1막에서는 외디프의 출생과 비극적인 예언, 2막에서는 외디프가 코린트를 빠져나와방황하다가 테베의  라이오스를 죽이고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테베를 해방시키는 , 3막에서는 외디프가 자신의 정체를깨닫고 눈을 찌른채로 테베에서 쫓겨나는 , 4막에서는 외디프가 조용히 최후를 찾아 떠나는 것을 다루고 있다.  외디프의 출생부터 죽음까지를 모두 다루고 있다

에네스쿠의 음악은 극과 아주  결합돼있고, 극의 의미를 전달하기 위해 모든  쏟아 붇는 느낌이다. 2막에서 스핑크스의 신비로운 목소리나 스핑크스가 외디프를 비웃는 장면을 소름끼칠만큼 훌륭하게 표현해낸다. 3막에서 외디프가 점점 자신의 과거를깨달아가며 멘붕하는 것은 전통 오페라보다는 오히려 연극에 가깝다고   있다. 특히 슈프레흐게상을 많이 써서 대사를 낭독하는 듯한 효과가 자주 나온다.


지휘는 서울시향을 객원지휘 한적도 있는 레오 후세인이 맡았다. 2014년에 베를린 슈타츠오퍼에서 파우스트를 지휘한  봤었는데 나름 괜찮았던  같다. 2011  모네에서  프로덕션을 올렸을 때도 지휘를 맡았었다고 한다

출연진은 외디프에 요한 로이터, 예언자 티레시아스 역에  톰린슨, 어머니 조카스트 역에 사라 코놀리, 삼촌 크레옹 역에 사무엘 , 포르바스 역에 심인성이 나왔다무엇보다 톰린슨 옹이  늙기 전에   있다는  기대됐다



1막이 시작됐는데 여러모로 어수선했다. 일단  자리가 생각보다 아주 심각한 시야 장애석이었다. 유독 1막에서 심할  밖에 없었는데, 무대를 위아래로 꽉채우는 구조물에서 노래한는 거라 구조물의 3층은 전혀 보이지 않는 사각에 위치했다. 덕분에 1막에서 티레시아스가 노래하는 장면에선 톰린슨 손가락 밖에 못봄여기에 오케스트라의 합이 확실히 흔들렸다. 물론 에네스쿠의 음악이 어려운 편이지만  정도로 흔들리나 싶을 정도. 여기에 합창단 까지 발음이 통일되지 않아 매우 거슬렸다.  위치가 상대적으로 잔향이 적어 더욱 예민하게 들렸을  있다.


하지만 2막이 되고 주인공 외디프가 등장하면서부터 중심이 잡혀갔음. 워낙 연극적인 부분이 많아서 주역들의 불어 딕션이 매우중요한데 로이터의 딕션은 상당히 좋은 편이더라. 반면 외디프의 양모인 메로프 역의 가수는 발음이 많이 딱딱해서 비교됐다.


스핑크스는 2막에  한번 잠깐 나오는게 끝이지만 음악적으로는 하이라이트라고 꼽을만  중요한 파트다. 길렌 음반에서는 어떻게 처리한건지는 모르겠지만  세상 사람이 아닌  같은 목소리를 들려준다. 발음 하나하나에 사악함과 비웃음이 담겨있는데정말 경이로운 해석이다. 어제의 프로하스카가 이런 느낌이었다. 이부분을 에네스쿠가 특히 신경을   밖에 없었을텐데, 원작과 달리 수수께끼의 내용을  ‘운명보다 강한 것은 무엇인가?’ 바꾸었기 때문이다. 정답은 인간이라고 말하는 외디프를 비웃으며 사라지는 스핑크스의 웃음이 감상 포인트다.


아쉽게도 이번 공연에서는 그런 느낌과는 거리가 멀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가 잔향이 많지 않아 불리한 것도 있겠지만, 스핑크스의 노래에서 소름끼치는 섬뜩함을 전혀 느낄  없었다.


그래도 2막에서부터 살아난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로열 오페라 하우스의 클라스를 보여주었다. 스핑크스로부터의 해방을 기뻐하며 테베 사람들이 뛰쳐나와 기쁨의 합창을 부르는 장면인데 굉장한 폭발력이었음.


3막은 사라 코놀리와  톰린슨이 마지막으로 노래하는 대목이다. 사실 톰린슨은 기대했던 거에 비해 압도적이다는 인상은 받지못했다. 바렌보임 반지에서 무시무시한 보탄을 잊지 못했는데, 목소리가 전성기 때와 같은 힘이 많이 사라졌다. 어느정도 거친 느낌이 남아있긴 하지만 이제 다른 베이스 가수에 비해 뛰어나다고 하긴 어려웠다.


사라 코놀리는 반대로 실력 발휘할 기회를 얻지 못한 느낌이었다. 조카스트 역이 극에서 중요하긴 하지만 음악적으로 압도하는 배역은 아니기 때문이다. 성량이 작은  아닞만 성량으로 압도하는 가수는 확실히 아니었다. 그래도 무대 위의 코놀리를 들을  있다는 것만으로도 만족스럽긴 했다.



두명의 한국인 가수 역시 다른 가수들에 전혀 밀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사무엘 윤은 크레옹 역이 비중이 크진 않지만 3막과 4막에서 특유의 힘있는 목소리로 깊은 인상을 남겼다. 특히 4막에서 안티고네를 인질 삼아 협박하는 장면은 아주 훌륭했다. 목소리 스타일  외디프를 맡아도 잘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르바스 역의 심인성은 처음 들어보는 가수였는데 역시 유럽에서 잘나갈만하더라. 동굴 같은 소리는 아니지만 알맹이 있으면서도 부드러운 베이스였다


무엇보다 가장 빛나는  단연 타이틀 롤의 로이터. 2막의 술취한 모습, 3막에서 차차 멘붕해가는 모습, 4 모든 고통을 이겨내고 현자가 되는 모습까지 모두 듣는 이를 몰입하게 만드는 노래였음. 슈프레흐게장 역시 연극의 한장면을 보는  했다



연출은  푸라였는데  푸라의 다른 연출에 비해 초현실적이지 않고 상당히 사실적이라는 점이 색달랐음.  푸라가 연출을 맡는 오페라가 무슨 공통점이 있을까 했는데 모두 신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있었다.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트로이인, 엘렉트라, 그리고 반지 까지. 외디프 역시 이런 점에서 시도한게 아닐까 싶다


진시황릉의 흙인형에서 모티브를 받은  같은데  흙인형들은 운명에 순종하는 인간을 상징하는  하다. 1막의 테베는  흙인형들의 이야기로 진행되고 2,3막은 현대에서 진행됨.  외디프는 계속 현대인으로 묘사되고, 그의   없는 과거는 고대의 이야기가 되는 셈이지. 스핑크스는 독일 전투기 파일럿으로 묘사되고 테베인들은 레지스탕스로 등장한다


4막은 다시 토용들이 있는 공간으로 변하는데, 외디프와 안티고네는 현대 복장을 입고 있지만 외디프를 테베로 다시 데리고 오려는 크레옹은 처음의 토용 의상을 입고 있다. 외디프에게 새로운 운명을 주겠다는 것은 결국 모든 것을 운명의 뜻에 맡기려는 것과같다는  보여주는 걸까. 이때 외디프를 도와주러 오는 테세와 아테네인들은 순백색 정장으로 등장하는데 마치 신적인 존재로 보인다. 외디프는 이들의 호의를 거절하고 흙인형이  인간들을 깨우고 무대  빛이 향하는 쪽으로 퇴장한다. 퇴장하기 전에 외디프 위로 (아마도 고운 가루) 떨어지는데, 학민킴의 루살카 엔딩이 생각났다. 비슷한 결말 다른 느낌! 이렇게 외디프는 마지막순간에 운명을 거스르고, 운명에 속박된 인간들을 구원한다는 연출이다

흙인형이 사람이 되는 순간을 위해서 여러 연기자들이 4 처음부터 끝까지 정지자세로 무대에서 대기한다. 진짜 흙인형이랑 섞여있어서 사람인가 아닌가 열심히 쳐다봐도 정말 멈춰있길래 헷갈릴 정도였다


3막의 티레시아스는 눈이  예언자로 나오는데, 4 외디프의 하얀 머리카락과 수염이 3 티레시아스와  비슷하다. 생각해보니 1막에서 티레시아스의 모습을 시야각 때문에 직접 보지 못했으니 1막부터 장님이었는지 3막부터 장님이었는지  수가 없네ㅜㅜ 이렇게 연출해주니 4 외디프의 모습은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알고 있는 예언자 티레시아스와 비슷한 점이  있구나 싶었다



의상이나 조명이나 동선이나 어떤 점으로 보나 고퀄이었다.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날  생기는 조명 변화는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무엇보다 무대 위의 사건들이 모두 어떤 조명 아래에서든 사실적으로 보이게 만들었다. 최근에 루살카나 오를란도 핀토 파초, 리골레토를 보면서  멘붕이 왔는데 오페라는 이런 거였지 눈정화하는 시간이 됐다.




여담: 오늘이 외디프 첫날이라 그런지 홀텐과 파파노도 1 객석에 앉아서 관람했다. 별생각 없이 1층을 보고 있는데 홀텐이 앉아서  여성분한테  거는거 보고 리얼 기절할뻔. 진짜 홀텐 만나면 밤새 안쉬고 홀텐 디스코그래피 하나하나 읊으면서 하악댈 있는데!!!!! 인터미션때  말걸어야지 했지만 홀텐이 나간 출구를 잘못 생각해서 결국 오페라 하우스를  뒤졌지만 못봄ㅠㅠ 퇴장할 때는 놓치지 않겠다고 계획했는데 커튼콜  정신차려보니 이미 나가있더라ㅠㅠ 홀텐 만나서 앞으로 오디오 코멘터리 계속넣어주세요 으헝허어헝헝 했어야 하는데….

도대체  자리 앉은 여성분은 무슨 행운이 있길래…. 홀텐이 말도 걸어주고 핸드폰으로  보여주고 하던데 흑흑흑

파파노나 홀텐이나 다들 객석에 들어오면 사람들이 말 걸고 하는게 귀찮아서인지 공연 시작하기 1분 전쯤에나 들어오더라.

홀텐 뒷뒷 자리가 파파노.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을 순간이 가장 아쉬운 순간으로 바뀌었음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