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지명 Arles의 실제 발음은 아흘르(혹은 아를르)에 가깝지만 외래어 표기는 아를로 정해져있다.


유명한 테너 아리아인 ‘페데리코의 탄식’이 등장하는 오페라다. 아리아 모음집을 듣질 않다보니 가끔 성악 콩쿨을 봐도 모르는 곡이 나올 때가 많다. 페데리코의 탄식 역시 유명하다는 것은 알았지만 찾아 들을 일은 없었다. 그래도 영화 ‘더 테너 리리코 스핀토’에서 꽤 중요한 아리아로 등장하기 때문에 기억하고 있는 작품이다. 듣보 작품 발매에 열성인 다이나믹에서 최초로 전막 영상물이 발매됐다.


알퐁스 도데의 희곡 아를의 여인은 클래식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다. 칠레아의 작품을 빼놓더라도 비제가 작곡한 부수음악 역시 유명하다. 모음곡 형태로 연주되는 것이 보통이기에 극의 내용에 대해 알만한 계기는 없었다.


칠레아의 작품을 본 것은 아드리아나 르쿠브뢰르 뿐이었다. 주인공이 연극 배우이다보니 연극적 요소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특히 아드리아나가 무대에서 독백 장면을 연기하는 부분은 오페라에서 보기 드문 명장면이다. 약간은 복잡하게 느껴질 만큼 등장인물이 많고 서로 얽혀 있는 편이다. 음악이 탁월하다는 느낌까진 아니더라도 극의 진행에 매우 잘 어울리는 편이다. 


아를의 여인 역시 비슷한 스타일이다. 보통의 오페라에 비해 연극적 요소의 비중이 크다. 줄거리를 요약하자면 페데리코가 아를의 여인과 사랑에 빠져 결혼을 하려는데, 여자의 옛 애인이 찾아와 여자의 부정함을 고발하고 이에 페데리코가 실성하여 영원한 고통에 빠져 자살한다는 이야기다.


내용이 약간 독특한 면이 있는데, 일단 아를의 여인이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오페라만 그런 게 아니고 원작에서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래서 프랑스에서 L’Arlesienne이란 단어는 사건과 관련이 있는데 정작 등장하지 않는 사람을 지칭할 때에 관용구 처럼 쓰인다고 한다 (영문 위키백과). 그리고 페데리코가 아를의 여인을 버리는 계기가 명확하지 않다. 전남친이 결혼식 전날 등장하여 자기랑 결혼하기로 했었는데 페데리코한테 떠나버린거라며 예전 편지를 보여주는데, 요즘 시각으로 보았을 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알 수가 없다. 전남친의 존재? 전남친과 있었던 뜨거운 편지? 상상력을 동원해도 전남친과의 사이에 애가 있다든가, 낙태를 했다든가 정도인데 이런거로 결혼할 여자를 내팽겨치는 사람을 요즘은 찌질하다고 표현하지.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두 연인이 처음 만나는 장면이 등장하지 않는 오페라에서 두 사람의 사랑은 중요한 주제가 아니다. 모종의 이유로 페데리코는 연인에게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미치광이가 된다. 


여기에 페데리코를 구제하기에 애쓰는 어머니의 이야기가 들어가면서 예누파를 떠올리게 한다. 자식의 결혼 걱정을 하는 어머니, 여자의 과거 때문에 연인을 버리는 남자, 오갈 데 없는 처지의 주인공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인물(예누파에선 라카, 아를에서는 비베타) 등 여러모로 예누파와 비슷한 점이 많다. 



연출은 꽤 적극적으로 이야기에 개입하는 스타일이다. 아를의 여인을 묵역으로 등장시키는데, 1막 전주곡에서는 페데리코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내다가 전남친인 메티피오에게 살해당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행복한 두 사람의 관계가 메티피오가 과거를 들추는 순간 파국으로 치닫는 것은 맞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그런 이유로 연인을 버리는 페데리코의 잘못이 더 커보인다. 연출이 너무 메티피오에게만 책임을 묻는 것 같았다. 2막을 아예 음침한 정신병원으로 만든다든가, 3막은 대놓고 페데리코의 착란을 보여준다. 


음악적으로 가장 인상깊은 부분은 유명한 페데리코의 탄식, 그리고 3막에 나오는 사중창이다. 메티피오는 목동이자 페데리코의 대부 같은 역할을 하는 발사자르에게 자신이 아를의 여인을 납치해갈 거라고 이야기하고 페데리코는 그 이야기를 들으며 잊으려 노력했던 전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며 비베타는 이를 말린다. 둘둘 짝지어서 분리된 공간에서 노래한다는 점에서 리골레토의 사중창이 떠오른다. 대신 이 때문에 페데리코가 미쳐서 자살한다는 결말이나, 똑같이 미친 짓을 계획하고 있는 메티피오의 모습의 강렬함 때문에 극적인 긴장감은 오히려 이 쪽이 더 큰 편이다.



가수들은 상당히 훌륭하다. 이름을 들어본 가수는 없지만 모두 제역할을 훌륭하게 해낸다. 페데리코 역 테너 드미트리 골로브닌Dmitry Golovnin은 시원한 스핀토 목소리를 제대로 보여준다. 비베타 역의 소프라노 마리안젤라 시칠리아Mariangela Sicilia는 굉장히 깨끗하고 안정적인 발성을 들려주는데 비브라토의 사용도 딱 적당해서 마음에 쏙 들었다. 자주 듣고 싶은 소프라노를 기대치 않은 곳에서 찾았다. 아직 음반이나 영상이 나온 게 이것 뿐인데 앞으로 커리어가 더 발전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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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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