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조니의 파우스트 박사(Doktor Faust)는 여러모로 특이한 점이 많은 오페라다. 바흐 샤콘느 편곡 정도로만 부조니를 알고 있는 사람에겐 부조니가 오페라를 남겼다는 사실에 꽤 놀랄 것이다. 거기다 파우스트를 소재로, 그것도 독일어로, 심지어 리브레토도 작곡가 본인이 썼다면 말이다.


페루초 부조니라는 이름은 전형적인 이탈리아 말이지만 부조니의 어머니는 독일인이었다. 실제로 베를린에서 20년 가까이 활동하였기에 이탈리아인인 그가 독일어 리브레토를 쓰는 것이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1차대전 이후 독일과 이탈리아 어느 곳도 자신의 모국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스위스 취리히에 자리잡아 이 오페라 파우스트 박사를 작곡하게 된다. 부클릿에 따르면 작품 안에서 파우스트는 곧 작곡가 본인을 투영한 대상이기도 하다. 수많은 '마법'을 행한 뒤 정착하여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것은 부조니 본인의 비르투오소 피아니스트로서의 삶이기도 했다. 술집에서 개신교와 가톨릭이 싸우는 부분은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에서 방황하는 부조니 본인의 경험이기도 하다. 


파우스트를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오페라와 비교를 안할 수가 없다. 구노의 파우스트, 보이토의 메피스토펠레, 베를리오즈의 파우스트 겁벌을 비교 대상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이 중에서 겁벌은 내가 음악만 들었기에 코멘트하긴 힘들지만 이 작품들을 비교하다보면 재밌는 점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첫째로 구노의 작품을 제외하고는 모두 작곡가 본인이 리브레토를 썼다. 베를리오즈는 협업이긴 했지만. 바그너를 제외하고 리브레토를 작곡가 본인이 쓰는 경우가 흔하지 않다는 걸 생각해볼 때, 이건 단순히 우연이라기보단 리브레토를 본인이 쓸만큼 문학적인 재능이 있는 작곡가들이 파우스트에 도전했다고 생각해볼 수 있다.

부조니의 오페라가 아이러니하게도 유일한 독일어 오페라라는 점 역시 흥미롭다. 오히려 독일에서 파우스트를 손 대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기 때문일까. 사실 부조니 작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리브레토가 괴테의 파우스트가 아닌 파우스트 전설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파우스트의 이야기와 꽤나 다른 편이다. 부조니 역시 괴테의 벽을 넘지 못하고 오히려 괴테가 참고했던 민간 전설을 모아 이야기를 엮어 나갔다.

또 하나 특이한 점은 메피스토펠레가 베이스가 아닌 테너라는 점이다. 전통적으로 오페라에서 악마는 베이스, 아니면 낮은 바리톤이 당연하지만 부조니는 과감하게 테너를 선택했고 오히려 파우스트를 바리톤에게 주었다. 과연 테너 메피스토가 얼마나 어울릴까 싶지만, 생각보다 상당히 설득력있다. 


부조니의 작품이라곤 NHK향 공연에서 들었던 비극적 자장가 밖에 없었는데, 파우스트는 상당히 다른 스타일이다. 오페라 안에 온갖가지 음악 양식이 혼재돼있다. 시마노프스키나 야나첵 등을 들으면 작품을 관통하는 뚜렷한 색채를 느낄 수 있는데 부조니의 오페라에서는 온갖 작곡가의 향기를 느낄 수 있다. 알슈의 엘렉트라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는가 하면 푸치니를 떠올리게 하는 부분이 있고, 스트라빈스키의 신고전파 음악을 연상케하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가장 비슷한 작곡가를 꼽으라고 하면 누구나 알슈를 꼽을 듯 하다. 독일어라는 점도 같지만 어두운 화성, 오케스트라의 높은 비중이 특히 그렇다. 다만 오케스트레이션은 편견 때문인지 약간 투박한 편이다. 부조니가 이탈리아 태생이니 이탈리아 향기가 좀 있지 않을까 싶지만 그런부분은 별로 많지 않다. 그래도 오페라 안에서 상당히 이질적인 아름다운 선율이 등장하는 부분이 종종 있다.

오르간 솔로 간주곡이나 오프스테이지 합창, 오케스트라 연주를 굉장히 많이 쓴 편이다. 인터뷰에서 설명하기론 이런 요소들이 작곡 당시 작품을 상연하는데 큰 장애물이 되어 빛을 받지 못하다가 최근에는 이제 그런 어려움이 큰 문제가 되지 않지만 작품 자체가 따끈따끈한 신작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전으로 인정받는 작품도 아니기 때문에 평가 절하 당하는 원인이 되었다고 한다. 


오페라의 이야기는 좀 불친절한 편이다. 일단 막 구분이 없이 3시간 짜리 오페라가 간주곡과 장면으로만 구분돼있다. 처음 파우스트가 메피스토를 만나는 장면에서도 꽤나 철학적인 질문 등이 등장하고 그 다음에는 시간이 훌쩍 건너 뛰어 구노에서 발랑탱에 해당하는 역할의 병사가 등장한다. 자신의 여동생을 더럽힌 자에게 복수를 다짐하는데, 파우스트가 그 여자를 유혹하는 장면은 오페라에서 전혀 등장하지 않기 때문에 처음 볼때 살짝 갸우뚱하게 하는 장면이다. 민간 전승을 소재로 한 오페라 답게 이야기가 건너 뛰는 장면이 상당히 많고 뚜렷한 스토리 라인이 없다는 것 역시 처음 보는 사람에겐 단점으로 작용한다.

마지막의 결말 부분 역시 다른 파우스트 오페라와 다르다. 구노와 보이토의 작품에서 파우스트는 구원 받지만 부조니의 오페라에서는 마지막으로 자신의 죄악을 반성하며 선행을 하여 자신과 파르마 백작부인의 아기에게 자신의 생명을 불어넣고 죽는다.


필립 조르당의 지휘도 훌륭하고 토마스 햄슨의 타이틀롤 역시 훌륭하다. 이 둘이야 원래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라서 별로 놀라진 않았는데, 메피스토펠레 역의 그레고리 쿤드의 활약은 예상 밖이었다. 쿤드야 영상물로도 보고 오텔로를 부르는 것도 서울에서 한번, 세비야에서 한번 직접 본적도 있는데 2006년에는 훨씬 더 쌩쌩한 모습을 보여준다. 최근 어디 오페라 상에서 최고의 가수를 받은걸 보고 얘가?? 이런 느낌이었는데 이 영상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시원시원한 목소리에 악마같은 비열함이 있다. 노래를 부르는 순간 메피스토에 딱이라는 느낌이 들 정도다. 약간은 비성 섞인 듯한 그 독특한 음색도 오히려 역할에 잘 어울린다. 조역으로 요즘 한창 잘나가는 귄터 그로이스뵈크가 나온다는 점도 재밌다.


한창 바쁠 때에 시간 내서 꾸역꾸역 쪼개서 보다보니, 안 그래도 쉽지 않은 작품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부가 영상으로 햄슨과 조르당의 인터뷰가 담겨있는데 총 43분 길이라 상당히 도움이 많이 된다. 햄슨은 이 작품이 왜 어려운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예술이란 인간에게 무엇인지 굉장히 깊이있는 썰을 풀어낸다. 가끔 음악하는 사람들의 얕은 사고 수준에 실망할 때가 있는데 햄슨은 예술가로서의 통찰을 보여준다. 조르당은 이 작품이 베르크 룰루나 보체크에 비견할 만한 작품이라고 평가하며 작품안에 담겨있는 여러가지 색채를 지적한다.


특별한 오페라를 보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할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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