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신하며 현대적인 마술피리 연출, 그리고 매혹적인 반주


네덜란드 국립 오페라의 원래 이름은 De Nederlandse Opera 였는데 Dutch National Opera로 정식명칭을 바꾸었다. 분명 단어 순서가 바뀌었는데 알파벳 이니셜은 같다. DNO는 영어로 해도 DNO 네덜란드어로 해도 DNO


난 마술 피리를 싫어한다. 항상 말하고 다니는 거라 블로그에도 몇번 언급했을 것 같다. 이야기는 중구 난방이고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는 심오한 철학이 담겨있는 척 하지만  명징한 의미를 지니지 못하고 그저 떠오르는 아이디어를 누더기 처럼 기워넣은 것만 같다. '알고보니 얘도 착한 놈'이라는 클리셰의 원조 격인데, 난 아직도 자라스트로가 선한 인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파미나가 어머니 밑에서는 행복하지 못할 거라며 강제로 납치해오는 건 전형적인 맨스플레인 아닌가. 거기다가 정작 파미나는 자라스트로 사원에서 강간당할 위험에 처하고. 문제가 심각한 인간이다.

마술 피리의 이야기를 제대로 하려면 끝도 없을 테다. 마술 피리라는 물건의 의미는 무엇인가, 왜 마술 피리와 세 명의 아이는 밤의 여왕에게서 나오는 것인가? 밤의 여왕의 남편은 왜 태양의 상징을 자라스트로에게 주었는지, 어째서 여성은 지혜로운 남자의 뜻을 따라야한다고 하는지. 왜 타미노와 파파게노가 처음 겪는 시련은 여자에게 말을 하지 않는 것인가? 어째서 시련을 겪은 자만이 여자를 얻을 수 있는가? 


싫어하는 오페라인 만큼, 나를 납득 시키는 마술 피리 공연을 더 갈구하게 된다. 이 DNO 공연 역시 어쩌면 해답의 실마리를 주지 않을까 싶어 구입하게 됐다.


오페라를 통해 여러 스타일의 극 예술을 접할 수 있다는 건 상당히 즐거운 일이다. 특히  전통적인 오페라 연출가가 아니라 사샤 발츠 처럼 안무가라든가, 하네케 처럼 영화 감독인 사람의 연출은 특별한 재미가 있다. 연출가 사이먼 맥버니Simon McBurney는 영국의 연극 배우이자 연출가다. 오페라를 자주 하는 편은 아닌데, 메이킹 영상을 보니 어렸을 적에 오보에를 배웠다고 한다. 


맥버니의 연출은 여러모로 현대 연극 스타일이라는 걸 쉽게 느낄 수 있다. 무대는 텅 비어있고 4개의 와이어로 연결된 넓은 단이 하나 있을 뿐이다. 무대 효과음을 라이브로 연주하는 효과음 아티스트가 오른쪽 방에 들어가 있고, 왼쪽 구석에서는 칠판에 분필로 글씨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이를 카메라로 촬영해 프로젝터로 무대에 영사한다. 서곡에서는 이 분필 시각화만을 사용하는데 상당히 효과적이다. 이미 설계된 영상이 아니라 무대에서 음악과 함께 그리고 있는 그림이라는 점이 몰입도를 특히 높인다. 오케스트라 역시 연극의 일부로 활용한다.


훌륭한 연출의 기본은 사실적인 연기다. 이 공연은 처음 시작 Zu Hilfe부터 탄탄한 연기를 보여준다. 타미노는 무대 위에서 진심으로 공포에 질려 도움을 외치는 모습을 표현했다. 밤의 여왕은 휠체어를 탄 할머니로 등장하는데 두 아리아에서 보여주는 연기가 상당히 사실적이다. 파파게노 노래에서 등장하는 유머 역시 만족스럽다. 새를 표현하기 위해 배우들이 악보를 반으로 접어 새를 흉내내는 것 역시 귀여운 장면. 


대사 장면을 처리하는 것 역시 설득력있다. 대사와 이어지는 아리아의 전주를 적당히 오버랩 시킨다든가, 2막 처음 자라스트로의 긴 대사를 음악 위에 얹어버린다든가. 또 문제가 되는 인종 차별적인 대사를 삭제하거나 수정했다. 파파게노와 모노스타토스가 만나는 장면에서의 흑인 관련 대사는 아예 삭제하고 , 자라스트로가 '네 영혼은 얼굴 만큼이나 검구나' 라고 말하는 장면 역시 schwarz를 schmutzig(더러운)로 바꾸고, Gesicht 역시 Lust(욕정)으로 바꾸었다. 얼굴 만큼 더럽다 라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어서 이렇게 바꾼 거일텐데, '네 영혼은 네 욕정만큼 더럽구나'라는 표현이 꽤 어색하긴 하다. 아니 욕정이 이미 더럽지 뭐...


전체적인 연출 방향은 이야기의 병신스러움을 딱히 숨기지 말자는 것 같다. 이야기를 짧은 장면들로 해체하고 그 안에서 생기는 코믹한 면모들을 잘 캐치해낸다. 남녀 간의 대립에 대해 특별한 메시지를 넣지 않는다. 인종 차별적인 발언은 삭제했지만 성 차별적인 발언은 그대로 두었다. 이 점은 2012 잘츠 마술피리에 비해 아쉬운 점이다. 


연출도 괜찮지만 반주는 정말 탁월하다. 지휘자 마르크 알브레히트Marc Albrecht는 DNO 키테츠의 전설로 접한 지휘자인데, 정말 이렇게 까지 모페라 반주를 잘해낼 지 몰랐다. 상주 오케가 없는 DNO는 그때그때 적당한 오케로 반주한다는 장점이 있는데 이번엔 금관이 내추럴 악기를 쓰는 네덜란드 챔버가 반주를 맡았다. 알브레히트는 DNO, 네덜란드 필하모닉, 네덜란드 챔버의 감독이다. 알브레히트의 반주는 요즘 핫한 쿠렌치스의 모페라 반주를 듣는 듯 하다. 시대연주의 명징함과 깔끔한 음색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박력이나 중요한 순간에 터뜨리는 사운드는 카타르시스를 준다. 정확한 아티큘레이션과 지루하지 않은 프레이징까지, 모든 면에서 놀라운 반주다.


가수진은 무난한 편인데, 밤의 여왕 역 이리데 마르티네스Íride Martínez의 기량이 상당히 훌륭하다. 스페인 사람인지 독일어 대사가 좀 구리다는 단점이 있지만. 


마술 피리 영상물을 더 찾아봐야겠지만, 반주 하나만으로도 들을 가치가 충분한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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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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