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한국인이면 진은숙 좀 들읍시다!


작품을 처음 보는 아니다. 대학교 1학년 때인가 2학년 때인가 내가 가장 존경하는 클덕 선배의 이끌림으로 타이틀을 DVD 같이 감상했던 적이 있다. 때야 오알못+현알못이었으니 작품에 대한 기억이 하나도 없다. 그래서 블루레이를 분류할 번도 보지 않은 오페라에 분류했다.


현알못이 현대음악에 대해서, 그것도 진은숙 처럼 알려진 작곡가에 대해서 감상을 남긴다는 상당히 부담스럽다. 굳이 현음덕후가 아니라 하더라도 한국 클덕들이라면 진은숙의 작품에 상당히 익숙한 편이다. 나만 해도 진은숙의 생황 협주곡과 첼로 협주곡을 공연장에서 직접 들었고, 하그너가 녹음한 바협 음반도 들은 적이 있다. 거기다 내가 지금껏 음반이 100장은 과연 될까 싶은데 하나가 진은숙의 DG앨범 이었다. 


내가 리뷰하는 오페라 처음으로 백인 남성이 아닌 작곡가의 작품이다. 다중 아웃사이더였던 앙드레 차이코프스키도 진은숙 만큼 주류와 거리가 있진 않을테다. 진은숙은 지구상에서 가장 약자 하나인 동양인 여성이다.


많은 한국인들이 진은숙의 음악에 친숙한 것은 사실이지만 사실 진은숙의 음악에서 한국적인 요소를 찾는다는 내가 아는 의미가 없다. 점에서 진은숙은 윤이상과 박영희와 확연히 구별된다. 진은숙은 한국인이라기보다는 세계의 시민이다. ( 글을 쓰면서 검색하다가 알았지만 언어 유희에서 한국 전통 음악의 느낌을 주려고 했다고 한다.)


오페라의 주제를 선택하는 데에서도 점은 명확하게 드러난다. 예컨데 윤이상이 심청을 선택한 것과 달리 진은숙은 앨리스를 선택했다. 차라리 오래 신화라고 하면 어느 문화권에나 있을 공통점이라도 있겠지만 앨리스는 서구의 철학으로, 영국의 문화 위에 쓰여진 작품이다. 


앨리스가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는 깨달은 대학원에 와서였다. 루이스 캐롤이 지은 동화는 언어 유희와 상징, 패러디로 가득 있다. 프로젝트 발표날붉은 여왕의 딜레마 언급할 예정이었는데 이미 다른 조에서 앨리스의 비유를 사용해서 당황했던 적이 있다. 비슷한 일로 저번 TENOR 학회에서 오전 발표 동안 나를 포함해 트리스탄 코드를 명이나 언급했었다.


진은숙이 앨리스에 관심을 보였다는 그의 이전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앞서 언급한 DG 진은숙 음반에 수록된 소프라노와 앙상블을 위한 문자퍼즐Akrostichon-Wortspiel 전형적인 앨리스 스타일의 작품으로, 실제로 루이스 캐롤의 텍스트를 활용하기도 했다. 그의 스승인 리게티의 위대한 죽음에서 대신이 A-Z 주고받는 대목 역시 진은숙의 앨리스를 예고한다고 있다.


진은숙의 오페라는 캐롤의 원작을 충실히 재현한다. 대부분의 장면이 삭제되지 않고 들어가있다. 단순히 어느 정도 충실한 정도가 아니라, 앨리스 원작을 모른다면 무대 위에서 무슨 일이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안되는 부분이 있을 정도다. 결국 오페라 보면서 중간중간 멈춰서 한국어 위키에서 해당 챕터를 조금씩 읽어가면서 감상했다. 한국어 위키에 앨리스 전문이 번역되어 올라와 있으니 오페라를 감상하고 싶다면 한번 미리 읽어보자.


진은숙은 대사와 노래를 적절하게 혼합해가며 앨리스를 풀어간다. 비교적 레치타티보와 아리아, 앙상블이 명확히 분리돼있다. 하지만 대화체 대사와 레치타티보간의 분리는 상당히 모호해서 마디 안에서도 말이냐 노래냐가 바뀐다. 카운터테너가 부르는 토끼 역할의 경우 대사에서의 낮은 목소리와 노래에서 높은 목소리가 확연히 대비된다. 


대사와 음악의 전환이 상당히 자연스럽다. 아리아를 부르는 대목 역시 원작에서 중요한 독백이기 때문에 극적으로 상당히 자연스럽다. 가장 마음에 대목은 모자 장수 챕터다. 미친 다과회Mad Tea Party 간주곡을 예전부터 종종 들어서인 점도 있지만, Twinkle twinkle little bat 대목을 푸가로 처리하는 것이나 모자 장수가 시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독백을 멋진 아리아로 처리한 점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앨리스의 아리아 중에서는 돼지가 되어버린 아이에게 불러주는 노래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가노는 진은숙의 작품을 오랫동안 지휘했다. 오페라 지휘자로서 그의 능력에 물음표가 붙는 경우가 많지만 진은숙의 작품에서는 아쉬운 점을 느끼지 못했다. 그건 물론 내가 현알못이라그래도 그나마 구별할 있는 미친 다과회 간주곡은 정명훈 보다 리드미컬하며 독특한 음향도 살아나더라.


가수 중에는 앨리스를 맡은 샐리 매튜스, 하트 퀸을 맡은 귀네스 존스(!), 모자 장수를 맡은 디트리히 헨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아마도 존스 여사님의 마지막 오페라 전막 영상물이 되지 않을까신경질적인 하트 퀸을 왕년의 느낌 조금 살려 질러내신다.



아힘 프라이어Achim Freyer 여러모로 익숙하고 우리나라 와서 수궁가 연출한 영상도 조금씩 봤지만 정작 전막 연출을 공연이 처음이다. 프라이어에 대해 별다른 생각이 없었는데 4월갑이 잘츠 마술피리를 극찬하고 최근 나온 만하임 반지도 엄청난 호평을 들어서 언제 한번 제대로 보고싶은 연출가였다.


현대 오페라, 그것도 초연에서 연출을 맡는다는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작품을 떠올릴 아힘 프라이어의 독특한 연출을 분리시키는 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반대로 비교대상이 없기 때문에, 이것 말고 다른 방식을 상상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연출을 놓고 평가하는 자체도 어렵다.


비록 다른 전막 공연을 적은 없지만, 동안 조금씩 접한 프라이어의 연출을 놓고 봤을 앨리스 연출은 완전히 프라이어의 색채 그대로다. 마술 피리든, 수궁가든, 반지든, 앨리스든 아힘 프라이어의 광대 인형극 같은 이미지는 언제나 비슷하다. 동안 다른 오페라를 프라이어 식으로 연출했다면 앨리스는 오페라 자체가 프라이어를 위해 만들어진 느낌이다. 현대 오페라라는 감안하더라도 작품을 다르게 연출한다는 것을 상상하지 못할 같다. 최근 리뷰한 라인만, 차이코프스키, 바인베르크의 작품들 역시 연출이 작품과 상당히 붙어있는 느낌이지만 앨리스는 연출이 작품 자체의 일부처럼 느껴진다.

진은숙의 기묘한 음악은 캐롤의 기이한 이야기를 이상한 각도로 바라볼 수밖에 없게 만드는데, 아힘 프라이어는 정상적으로 보라고 해도 삐뚤게 보는 인간이다. 모든 사람이 기괴한 탈을 쓰고 비정상적인 인형극을 하며 앨리스의 키가 변하는 과정 역시 부자연스럽고 과장되게 표현하는데 이를 통해 프라이어는 캐롤의 원작에 담긴 끔찍함을 전면에 내세운다. 진은숙과 프라이어의 접근 방식이 마치 처음부터 하나였던 것처럼 잘 어울리는 것이다. 


잡다한 말을 주저리긴 했지만 작품의 핵심엔 전혀 가까워지지 못한 것 같다. 이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잘 이해하는 것은 여전히 숙제로 남았다. 

글 시작의 드립을 진지하게 풀어보자면, 중요한 것은 진은숙의 음악이 한국적인 특징이 강하다는 것이 아니라 한국에서 가장 자주 접할 수 있는 현대음악이라는 것이다. 하나의 현대음악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작품 자체도 중요하지만 작곡가의 여러 작품을 접하면서 그 작곡가의 어법에 익숙해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진은숙은 한국에서 가장 입문하기 좋은 현대 작곡가가 틀림없다. 비록 놓치긴 했지만 롯데 콘서트홀 개관 기념으로 별들의 아이들의 노래라는 거대한 작품 역시 한국에서 초연되지 않았는가. 2017년엔 콘서트 버전으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역시 공연한다. 제대로된 현대 오페라 공연을 기대하기 어려운 국내 사정을 생각했을 때 대단한 일이다. 진은숙은 파볼 만한 작곡가고,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자주 공연된다는 건 중요한 메리트다.


블로그 이미지

D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