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대체 왜 가족 오페라로 마술피리 같은 걸 선택하는지 모르겠다. 헨젤과 그레텔이나 어린이와 마법 같이 좋은 작품들 놨두고 말이다. 작품 속의 여혐을 18세기의 개소리처럼 보이게 하던 연출을 볼 때는 그래도 항마력이 있었는데 여혐을 아무렇지 않게 개그 포인트로, 그것도 우리말로 하는 걸 보니 구토가 날 것 같다.

차라리 일반 관객을 대상으로 한 공연이었다면 작품에 담긴 여혐을 적나라하게 비꼬아도 상관없었을 테다. 어린 애들 다 보고 있는데, 대사도 우리말로 바꾸고 생략까지 한 공연에서 여혐을 안 자른 건 욕 먹어 마땅하다. 어린이들에게 교육적으로 좋지 않은 대사를 삭제하지 않을 거면 이 작품을 가족 오페라로 올리지 말았어야 한다. 


노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인종차별 대사도 없앴고, 대변인이 여자는(Ein Weib) 말만 많고 행동은 안한다라는 부분도 밤의 여왕은 말만 많고 행동은 안한다라고 자막을 바꿨다. 자라스트로의 여혐 대사도 아마 삭제됐던 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타미노와 파파게노는 시련 중에 언제나 ‘남자답게’라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쓰며, 파파게노의 시련을 위해 파파게나가 물건 마냥 준비돼있다는 것, 어리고 예쁘다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는 것 등 여전히 많은 여혐과 맨박스가 남아있었다.


우리말 대사에 대해서도 말해보자. 난 대사 우리말로 바꾼 거 괜찮게 생각한다. 대전에서 마술피리 봤을 때 가수들이 초등학생 영어 하듯 독어 대사치는 걸 듣고 있으니까 너무 괴롭더라. 관객 중 아무도 행복한 사람이 없었을 테다. 독어를 아는 관객은 되도 않는 발음을 듣느라 괴롭고 독어를 모르는 관객은 알아듣지도 못하는 말로 연극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데 우리말로 할 거였으면 대사연습을 훨씬 더 했어야 한다. 우리말 대사가 오글거리는 건 대사 자체 문제보다 가수들이 대사 연기를 너무 못하기 때문이다. 극중 등장한 사람 중에 유일하게 연극배우이자 연기지도를 맡은 사제2와 파파게노의 대화는 확실히 달랐다. 둘의 대사가 좀더 일반적인 어투라 그럴 수 있다기엔, 파파게나의 대사가 얼마나 어색하게 들렸는지를 생각해보면 쉽다. 어린이 눈에 맞췄다고 하기엔 애니메이션 성우 연기와 비교해도 어색했다. 물론 이걸로 출연진을 비판하고 싶진 않다. 마술피리 대사를 자연스럽게 처리할 수 있으면 연극배우로도 먹고 살 수 있겠지. 

번역도 어색한 부분이 있었다. Sie kommt!를 세번 반복하는 걸 “여왕님이 오십니다!”(정확하지 않음)라고 세번 반복했어야 했을까. 음절 갯수가 4배인데 말이다. 


연출 자체에 대해선, 써봤자 좋은 말 없겠지만 몇가지. 프로젝션은 21세기 무대 연출에 가장 강력한 장치이지만 그게 모든 걸 해결해주진 않는다. 텅빈 무대에 조악한 뱀 CG 영상이라니. 편한 해결법이 생기고 나서 이제 상상력으로 메꾸려는 시도 조차 부족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전반적으로 무대가 매우 썰렁해졌다. CG는 실제를 대체할 수 없다고 똥고집 부리는 놀란에게 배울 점이 있어보인다. 그리고 또 하나. 음악이나 연출이나 자기가 뭘 하려고 했으면 애매하게 하지 말고 확실하게 다듬어야한다. 밤의 여왕 아리아에서 남을 조종하는 느낌이 들게 하겠다는 의도는 좋았지만, 그 동작은 너무 어설퍼서 웃음이 나왔다. 그리고 극 처음과 마지막에 피리 부는 남자가 모차르트라는 걸 한참 나중에 공연장 캐스팅 목록 배너를 보고 알았다. 하... 오페라에 작곡가를 소환하려면 누가봐도 어 저건 그 사람이다 싶어야한다. 구트가 피에라브라스에서 슈베르트를 등장시키고 헤어하임이 바그너와 차이콥을 등장시키는 걸 봐라. 모차르트면 그 유명한 초상화의 빨간색 옷과 흰색 가발이라도 씌우면 될 것을. 검은 가죽 코트같은 거 걸쳐놓고 "얘 사실 모차르트에요" 하면 퍽이나 믿어주겠다. 


음악에선 지휘 지중배와 파파게노 우경식이 빛났다. 파파게노는 이름을 처음들어봐 전혀 기대하지 않고 갔는데, 딕션, 발성, 프레이징 모든 게 탁월했다. 첫 아리아에서부터 제대로 배운 독일 가수의 느낌을 물씬 풍겼다. 단순히 목소리 좋고 딕션 좋아서 완성되는 노래가 아니라 말하듯이 가사를 뱉어내며 프레이징을 완성하는 수준이었다. 보통 가수가 아니구나 싶어서 프로필을 읽어보니 독일 킬 국립극장 전속으로 8년 활동하셨더라. 독일 극장 전속으로 활동한 사람이면 다른 프로필 더 볼 것도 없이 믿고 가도 된다는 평소의 생각이 맞아 떨어지는 순간이었다.


독일 극장에 대한 무한신뢰 때문에 지중배에 대해서도 기대가 컸다. 2013년에 예당 가족오페라 투란도트를 괜찮게 들었기 때문에 더욱 기대가 됐다. 이번 공연은 좀 흥미로운 부분이 있었다. 극장 지휘자에게 기대했던 가수 반주는 아쉬웠고, 오히려 오케스트라만 가지고 음악을 만들어내는 부분에선 뛰어났다. 가수 없이 나오는 전주나 후주 혹은 피날레처럼 오케스트라만으로 음악이 완성되는 부분에서 지중배의 지휘는 극의 늬앙스를 분명하게 표현해주었다다. 다른 국내 지휘자들에게 기대하기 어려웠던 부분이다. 모차르트 음악을 뽑아내는 것 역시 너무 무겁지 않았지만 시원하고 깔끔하게 달리는 부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하지만 가수와 템포가 어긋나는 것이 상당히 많았던 점은 아쉽다. 음악의 진행과 템포가 자주 바뀌는 곡이라 위험하다는 것을 고려하더라도 가수가 원하는 템포와 지휘자의 템포가 다르다는 인상을 주는 부분이 꽤 많았다. 곡 섹션의 끝에서 느려질 때 가수와 어긋나는 것은 흔히 생기는 차이이지만 곡의 템포가 안정적으로 흘러가는 순간에서도 가수와 오케스트라의 호흡이 달라 불안했던 부분이 종종 있었다. 물론 가수들이 약속된 템포에 안 맞추거나 노래를 부르면서 템포가 불안정해지는 실수를 할 수 있고 (밤의 여왕의 콜로라투라 패시지라든가), 반대로 오케스트라가 지휘나 가수를 못 따라갈수도 있지만 굳이 최종적인 책임을 물어야한다면 지휘자에게 물어야하지 않을까. 


코민이 돈조반니를 지휘할 때 오케스트라가 가수와 조금이라도 어긋날라 치면 오케스트라를 다잡아 가수와 다시 합일시키는 것이 아주 인상적이었다고 썼다. 낭만주의가 아닌 모차르트의 음악처럼 템포의 흐름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곡에서 가수는 언제나 오케스트라와 떨어질 수밖에 없는 존재다. 오케스트라와 똑같이 가겠다고 표현을 줄이는 건 더 심각한 문제겠지. 중요한건 그 간극을 얼마나 빨리 얼마나 정확하게 메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지중배가 이 점에서 다른 지휘자들에 비해 부족하다고 주장한다면 너무 박한 이야기일 테다. 딱딱하게 일정한 템포로 안 틀어지고 가는 것 보다 어긋나더라도 자연스럽게 노래하는 것이 더 낫다는 건 말할 필요도 없다. 마술 피리를 훌륭한 퀄리티로 공연하는 게 왜 어려운지 보여주는 부분이라고 해두자.


밤의 여왕이나 자라스트로, 모노스타토스, 파파게나의 노래는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밤의 여왕이 입장 때 넘어진건 본인에게 정말 악몽 같았던 순간이었을 테다. 길가다가 혼자 넘어져도 쪽팔린 것 때문에 아픈 건 생각도 안나는 법인데, 몇백명의 관중이 자기만 지켜볼 때 넘어지다니… 다행히도 O zittre nicht는 짧은 전주 후에 가수만 나오기에, 지휘자와 가수의 뜻이 어긋날 일이 없었다. 일어나서 바로 노래를 하려나 싶었는데 퇴장하고 숨을 고르고 아예 다시 시작했다. 걱정했던 것과 달리 흔들리지 않는 모습으로 좋은 노래를 들려줬다. 


타미노를 맡은 김세일은 기대가 컸기에 아쉬움이 남을 수밖에 없었다. 연출 덕에 손해를 보는 것도 컸지만 딕션이 불완전 할 거란 생각은 못했다. 타미노 음역 전체에서 모두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는 귀한 테너이지만, 그 부분은 좀 아쉬웠다. 아 물론 캐스팅 전체를 생각했을 때 나쁜 딕션은 아니었다. 


딕션에서 가장 손해를 본 가수는 파미나 역이었다. 유튜브에서 잠깐 들었을 때도 레가토 표현이나 딕션이 너무 딱딱하다는 인상이 있었는데 실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실제로 발음 자체가 이상하거나 잘못 낸다기 보다는, 성악적인 표현과 겹쳐 더 어색하게 느껴진 것 같다. 대체로 사람들은 같은 모국어 사용자의 독특한 액센트를 더 잘 캐치해내기 마련이다. 한국인의 영어 발음에서 한국어 느낌을 가장 잘 캐치해내는 건 한국인이듯, 한국어스러운 발음은 한국 관객들에게 더 강조될 수밖에 없는 약점이다. 목소리 역시 수브레트 느낌으로 가벼워서 내가 좋아하는 파미나와는 거리가 있었다.


예당에서 기획 제작하는 거의 유일한 오페라일 텐데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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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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