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퍼 프랑크푸르트는 생각보다 작습니다.


오페라는 돈지랄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거대한 유로 마크가 오페라 극장 앞에 서있는 모습. 


먼저 이 공연을 볼 수 있도록 프랑크푸르트까지 늦지 않고 도착해준 대한항공 기장과 승무원 여러분, 그리고 인천공항과 프랑크푸르트 관제탑 직원 분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여러분들의 노고가 없었다면 7시 30분 까지 극장에 도착하지 못했을 거예요. S-Bahn과 구글 맵에도 감사합니다. 덕분에 생전 첨와보는 공항에서 극장까지 길 안 헤매고 왔습니다.



출발하면서 제일 걱정됐던 게 과연 이 공연을 볼 수 있을까였다. 연착하거나 입국 수속이 늦어지거나 하면 날릴 뻔 한 공연이었는데, 다행히 무사히 도착했다. 공연이 7시 30분인데 극장엔 7시 10분 쯤 도착했다. 인터미션도 없는 공연이라 늦었음 큰일 났다. 다행히 마리옹 코티야르가 하차해서인지 표는 한참 많이 남았고 1층 3열 자리를 학생석으로 11유로에 볼 수 있었다.


오네거의 <화형대의 잔 다르크>를 메인으로 하고 여기에 드뷔시의 칸타타 <선택받은 여인>(La damoiselle élue)을 앞에 추가했다. <잔 다르크>의 길이가 1시간 20분 남짓이니 이 작품만 올리기는 공연 시간이 너무 짧으니 적당한 작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선택받은 여인>은 같은 프랑스 작품이라는 공통점 이외에도 신에게 선택받은 여인이라는 점에서 잔 다르크와 공통점이 있으며 천상의 삶을 묘사하고 있는 작품이다. 이 작품을 앞에 붙이면서 일종의 에필로그로 이야기를 시작하는 느낌을 준다.


연출은 라 푸라 델스 바우스의 알렉스 올레가 맡았다. 과연 라푸라 다운 연출이었다고 평할 수 있다. 텅빈 무대에 프로젝션과 인물 위주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갔다. 중간 중간 적당한 이동식 무대 장치를 활용하는 것도 라푸라 식이었다.


가장 핵심적인 연출은 무대를 위아래로 양분한 것이다. 아크릴판과 구조물을 이용해 꽤 높은 위치에 2층을 만들어냈다. 무대 정 가운데에는 얇은 기둥이 있어 1층과 2층을 오르락 내리락 하는 작은 승강기 같은 것을 두었다. 이곳을 통해 선택받은 여인이나 잔 다르크가 천상에서 내려오거나 지상에서 천상으로 올라갔다.


단순한 아이디어이지만 실제 물리적인 공간이 나뉘어있을 때 주는 효과가 상당히 좋았다. 일단 천상에서 노래하는 사람들은 모두 실제로 높은 곳에서 노래하게 되고, 관객들 역시 올려다보게 된다. 아크릴이 투명하기 때문에 밑에서 올려다보아도 가리지 않는다는 것도 잘 설계한 점이다. 잔 다르크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려온다고 할 때, 실제로 노래하는 두 명이 모두 2층에서 노래하기 때문에 전달이 잘 됐다.


<선택받은 여인>의 연출은 비교적 심심한 편이었다. 1층 중앙에는 메조 솔로가 (아마도 잔 다르크로 보이는) 죽은 여인을 껴안고 노래했으며 2층에서는 선택받은 여인이 금색 의상을 입고 노래를 불렀다. 합창단은 전혀 보이지 않도록 해 이들이 어디서 부르는 것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반면 <화형대의 잔 다르크>는 상당히 충격적이며 라 푸라의 다른 연출들과 비판 의식을 공유하는 해석이었다. 합창단은 일종의 현대의 야만인으로 등장한다. 낡은 속옷이나 넥타이 등은 분명 현재 혹은 가까운 미래를 보여주고 있지만 그들이 바지를 걸치지 않고 지저분하게 있는 모습은 야만의 생활로 돌아간 것 처럼 보인다. 프롤로그에서 프랑스의 운명에 괴로워하며 쓰러지던 인물들은 이내 잔 다르크를 비난하고 공격하기 시작한다. 이 작품이 가지고 있는 합창단의 아이러니함이 무대 연출로 전면에 나서게 됐다.


유튜브에도 semi-staged 공연들이 몇가지 있다. 하지만 대체로 가볍게 보이기 마련이다. 라 푸라는 완전히 잔혹한 엽기물을 만들어내 잔 다르크의 고통을 더 부각시킨다. 도미닉이 '너를 재판한 사람들은 사제나 인간이 아니라 짐승들이었다'라고 말하고 이어지는 장면에서 야만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요 인물들은 대놓고 인조 성기를 보인채로 돌아다닌다. 돼지 코숑은 더럽고 추악한 돼지로 나오며 나귀 역시 마찬가지로 끔찍한 인물로 등장한다. 이자들이 신나서 잔 다르크를 공격하는 장면은 그로테스크함의 극치다. 계단처럼 이뤄진 합창단석은 고장난 자동차에 매드맥스에나 나올법한 구조물로 이뤄졌다. 배심원들이 '양'으로 등장하는데 모두들 양의 털로 된 듯한 유럽의 재판장 가발을 쓴다. 오네거가 배심원들을 양으로 표현한 것이 실제로 이걸 노린 것인가 궁금해질 만큼 절묘한 장면이었다.

도미닉이 잔 다르크에게 '너가 잡힌 것은 카드 게임 때문이었다'고 말한 뒤 카드 게임 장면이 이어진다. 이게 콘서트 버전으로 볼 때는 뭐하는 짓인가 싶었는데, 실제로 무대연출로 보니 좀 더 괜찮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이들이 왕으로 등장하고, 건장한 남성들이 지저분한 모피코트를 입고 성기를 드러낸 채 각 진영의 대표로 카드게임을 진행한다. 

가장 이해가 안되던 장면을 이해가 되게 만든 부분이 있었다. 바로 에르트뷔스Heurtebise 장면이다. '프랑스의 가장 좋은 빵과 와인이 만나다'라는 내용인데 도대체 왜 들어가는 것인가 싶었던 부분으로, 그냥 마을 주민들끼리 신나게 노래하는 장면이다. 라 푸라는 이 부분을 남자 진영과 여자 진영이 서로 스포츠 응원을 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앞서도 계속 성기가 강조됐듯이, 이 만남 역시 스포츠 응원과 섹스라는 키워드를 사용해 지극히 말초적으로 표현된다. 이 모습을 보고 있는 잔 다르크는 자신이 프랑스를 구원한 게 겨우 이러기 위해서였나라는 표정이다. 이 장면에서 도미닉이 빡쳐서 책을 던지고 나가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하 여긴 노답이야 떠나야겠어' 이어서 등장하는 왕의 행렬도 가관이다. 잔 다르크의 도움으로 대관식을 올리지만 결국 잔 다르크를 버렸던 이 왕은, 자신의 가마에 프레츨을 잔뜩 매달고 지나간다. 잔 다르크가 겨우 저런 왕을 만드려고 고생했다 이거지요.


마지막 화형식 장면은 역시 라푸라답게 프로젝터를 활용했다. 


오케스트라와 합창단 모두 정말 좋았다. 드뷔시에서부터 오케스트라와 지휘자의 부드러운 색채감이 잘 드러났다. 특히 오보에 솔로가 압권이었다. 청아하고 뚜렷한 소리는 물론이고 비브라토 조절까지 섬세했다. 투티에서 사뿐하게 터져나오는 오케스트라의 소리를 듣고 있으니 저절로 행복해졌다.

합창단의 비중이 정말 큰 공연이었는데, 복잡한 연기까지 해야되는데도 흔들리지 않고 잘 해줬다. 

잔 다르크는 상당히 허스키하고 거친 목소리를 가진 배우였다. 청바지에 흰 민소매를 입었는데, 상당히 전투적인 잔 다르크라 과연 이 연출에 원래 계획대로 마리옹 코티야르가 나았으면 잘 어울렸을까 싶긴 하다. <선택받은 여인>의 내용이 에로틱하다는 걸 생각하면 잔 다르크를 전사로서가 아니라 성애를 느끼는 인간으로 표현하는 게 조금 자연스러웠을 것 같은데, 컨셉이 중간에 바뀐 것일지 궁금해졌다. 많이 울부짖고 격한 감정을 쏟아내 보는 내내 긴장하게 만들었다. 불어 네이티브가 아닌 것이 조금 티가 나긴 했지만 거슬리는 편은 아니었다. 다만 코티야르가 목소리의 톤을 상당히 다채롭게 가져가는 것에 비해 시종일관 비슷한 톤이라 터트리는 한방이 조금 없었던 것 같긴 하다. 예를 들어 나를 지키는 무기가 사랑L'amour이라고 외치는 대목도 소름끼치는 효과를 가져오기는 부족했다.


홀의 음향이 매우 좋아서 오케스트라나 가수나 모두 뚜렷이 잘 들렸다. 너무 울리지도 않고, 대부분의 독창진들이 또렷하게 잘 들리는 편이었다. 대체로 남자 독창은 아쉬운 반면 여자 독창은 어린이 합창단 솔로까지 뛰어났다.


전체적으로 평하면 연출이 작품의 매력을 정말 잘 살린 공연이었다고 할 수 있다. 오네거의 답없이 즐거운 음악과 무대의 끔찍한 현실이 주는 괴리감, 그게 이 작품의 가장 독특하며 중요한 특징이라고 본다. 


덧:

옆에 앉은 젊은 커플이 중간중간 속닥거려서 살짝 짜증이 났다. 어우 독일 관객들도 관람 매너는 안되네 ㅉㅉ 거리고 있었는데, 마지막에 작품이 조용히 끝나고 커튼이 완전히 내려오기 까지 몇초 동안 모두 침묵을 지키는 걸 보고 반성했다.

이 작품을 예습을 별로 못했다. 귀에 쏙쏙 들어오며 반복되는 쉬운 가사만 알아들으면서 '오 이 작품 좀 들리네'라고 만용을 부린 것.... 결국 기억에 의존 + 불어 청취 + 독어 자막을 다 동원해야했다.

물품 보관함이 당연히 무료일 줄 알고 가방을 맡겼는데 1.5유로를 받았다.

프로그램은 5유로 였는데, 당연히 모두 독일어로 돼있다. 5유로 짜리 냄비받침.

짧은 독일어라도 써보고 싶어 최대한 독일어로 말하려고 한다. 문제는 상대방이 다시 독일어로 물어보면 못 알아들음...

공연 끝나니 저녁 9시 반인데 밖에 나오니까 아직도 밝더라. 타임 리프한줄.

배고파서 태국 식당에 가서 주문하는데 77번 메뉴를 Sieben und siebenzig 라고 말했는데 계속 zwanzig냐고 물어보더라. 메뉴판을 손으로 가리키니 (왜 영어로 안했을까) 70은 siebzig라고 알려주더라....  zwanzig는 알았는데 siebsig는 전혀 생각 못했음ㅜㅜ 괜찮아 그 종업원도 아시안이니까 이해해주겠지...



원래 여행때마다 항상 매일 후기를 그때그때 썼는데 이번에는 블로그에 써보려고 합니다. 관심과 댓글 남겨주시면 여행다니는데 큰 즐거움이 됩니다 헤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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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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