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에서 칸타타 공연이 끝나자마자 급하게 기차역에 갔다. 이번 여정 중에 환승이 껴있는 경우가 별로 없는데 라이프치히에서 함부르크 행 기차는 베를린에서 환승해야했다. 환승 여유 시간이 9분인데, 예전 뮌헨 기차역에서 플랫폼 간 거리가 엄청나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 살짝 긴장했다. 


주말이라 자리가 없을까봐 좌석도 예매했는데, 내가 기다리던 곳은 33번 칸이었는데 내 자리는 22번 칸이라 기차가 도착하고나서 맞는 칸에 탄다고 뛰었다. 베를린 중앙역 지하 플랫폼에 도착해서 내리자마자 환승 플랫폼과 맞는 열차칸을 찾으려고 잔뜩 긴장했는데, 바로 맞은편에 있는 기차칸에 타면 되더라. 좌석 지정할 때 설마 이런 것 까지 고려해주는 건가 싶었다.



전날 라이프치히에서 머물던 호텔은 기차역에서 너무 멀어서 고생했다. 라이프치히나 함부르크나 모두 호텔 값이 비싸서 예약할 때 골치아팠던 곳이다. 함부르크에서 머물 숙소는 기차역에서 아주 가까웠다. 캐리어를 끌고가며 역시 호텔은 위치가 젤 중요하다며 룰루랄라 걸어갔다.

그런데 친절함이나 프로의식이라곤 찾아보기 힘든 카운터에서부터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았다. 방에 올라가보니 방에 침대와 샤워부스가 어떠한 경계도 없이 이어져있더라. 화장실은 공용화장실을 써야했다. 다른 도시에서보다 숙소 비용은 더 들었는데 이런 방이라니..


5시 반쯤에 도착했는데 오페라는 7시 반 시작이었다. 독일 모든 극장이 다 학생 티켓이 있는데 함부르크는 설명이 제대로 안 나와있는 편이었다. 공연 시작 15분 전에 학생 티켓을 판다는 공지가 있었다.

숙소에서 극장까지는 20분 정도를 걸으면 됐다. 함부르크 하면 떠오르는 건, 브람스의 음악을 만들었다고 하는 우중충한 날씨일테다. 



그런데 이날 내가 본 함부르크는 이런 모습이었다. 우중충은 개뿔, 선크림을 안 챙겨온게 아쉬울 정도였다. 여기가 독일의 루체른입니까? 




다른 오페라극장과 달리 함부르크 극장은 다른 건물들 한 가운데 껴있다.  위치나 건물의 디자인이 런던의 길드홀 음악원을 떠올렸다. 건물들 사이에 껴있기 때문에 극장 외관을 찍기가 좀 어려웠다. 


함부르크 오퍼의 감독이었던 말러의 초상화 부조가 건물 밖에 걸려있다.


시간이 좀 남았지만 박스오피스에 가서 찔러나보자 하고 학생 티켓 살 수 있냐고 물어봤다. 그런데 공지된 거랑 다르게 (아니면 내가 이해한 것과 다르게) 공연이 40분더 더 남았는데 흔쾌히 티켓을 주더라. 15유로였고 1층 1열 오른쪽에서 두번째 좌석이었다. 공연 티켓이 꽤나 많이 팔린 편이었지만 일단 극장 자체가 다른 지역에 비해 크기 때문에 남은 좌석도 그만큼 많았다.



함부르크 극장 로비는 화이트톤이었다. 로비가 넓고 쾌적했다. 


극장 내부는 거대했으며 투박한 느낌을 줬다. 특히 저 튀어나온 박스석은 예당이나 도쿄의 오차드 홀과 비슷한 느낌이었다. 다른 극장들과 달리 객석 조명이 유달리 어두워 사진 찍기가 좀 어려웠다. 극장의 좌우 폭이나 앞뒤 길이도 상당한 편이었다. 총 2800석 규모라고 한다. 


천장이 상당히 독특한 편이다. 층층이 계단식으로 반사판을 설치해놓은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1열 사이드라서 시야가 어떠려나 싶었는데 생각보다 훨씬 만족스러웠다. 일단 객석 양사이드로 있는 복도가 넓은 편이라 사이드라고 해도 벽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다.  여기에 오케스트라 피트 벽이 정말 낮아서 오케스트라가 한눈에 보였다. 여기에 피트가 객석쪽으로 볼록하게 튀어나와서 지휘자의 옆모습을 아주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무대를 볼 때 사각도 별로 없어 입맛따라 무대와 오케스트라를 번갈아가며 볼 수 있었다. 스테이지와 콘체르탄테를 동시에 즐기는 기분이었다.


독특하게 피트 벽에 구멍이 숭숭 뚫려있어서 오케스트라 소리가 정말 발 밑에서 들렸다. 내 앞에는 바순과 클라리넷이 있었는데 정말 잘 들리더라. 사실 좀 심하게 잘 들렸다. 가수 목소리보다 바순 소리가 더 크게 들리니까. 브리튼이 바순을 어떻게 활용했는지 몸소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프랑크푸르트와 라이프치히에서 본 공연의 연출이 워낙 좋았어서 이번 연출에도 기대를 많이했다. 거기다 함부르크면 페터 콘비츠니가 감독으로 있던 곳 아닌가. 함부르크 영상물 중 나비부인, 카르멜파 수녀, 아름다운 엘렌 등 다 연출이 뛰어났어서 이번 <한여름밤의 꿈> 역시 기대했다.


영상으로 본 로버트 카슨의 연출에 비하면 더 좋았지만 결과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전반적으로 무난하게 흘러가는 영국식 연출로, 내가 가지고 있던 작품에 대한 의문들을 해결해주거나 작품을 새롭게 이해하게 도와주는 연출은 아니었다. 내 스스로 이 작품에 대한 확신이나 이해가 부족했기 때문에 각각의 장면의 의미를 더 확실하게 부각시켜주는 연출을 바라기도 했다.  그렇다고 또 런던에서 본 팔스타프 처럼 배꼽빠지게 웃기느냐 하면 역시 그 만큼은 아니었다. 


처음 시작은 환상적이었다. 잠옷을 입은 어린 아이들이 공중 위에 떠다니는 의자에 앉아서 노래했다. 아무리 안전 장치가 돼있어도 저렇게 높게 떠서, 그것도 조금씩 계속 움직이는 의자에서 노래하려면 성인 가수들도 꽤나 무서울 텐데 어린 아이들한테 저런 걸 시키다니. 아이들이 의자를 손으로 꽉 잡고 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걱정되기도 했다. 꿈의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 카슨이 과감한 원색을 사용한 것과 달리 자연스러운 잠옷 색깔을 활용한 점도 좋았다.


하지만 그 이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었다. 네 명의 그리스인들은 빅토리아 시대의 의상을 입고 난장판이 된 목재 가구들 사이에서 헤맸다. 바틈 일당은 과장된 손발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외에 특별한 연출 포인트는 별로 없었다. 무대 뒤에 프로젝션을 통해 요정의 음악이 나올 때 잠이 드는 것을 표현하거나 묘약 꽃의 효과를 CG로 보여주는 건 있었지만 솔직히 별 쓸모없는 효과였다. 



가수들은 모두 탁월했다. 압도적이 주인공이 없어 요정 커플 + 아테네 두 커플 + 연극 커플 등 최소 8명이 정도의 가수가 배역을 다 잘 소화해내야하는데, 바텀 일당 전체가 모두 노래가 뛰어났다. 다들 노래 실력이 뛰어나서 오히려 극단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바텀의 실력이 좀 덜 부각됐다.


이 중에서도 특히 잘한 가수를 뽑자면 1등으로 오베론을 맡은 카운터테너 로렌스 자조Lawrence Zazzo를 꼽을 수 있다. 영어가 딕션이 분명하게 들리기 어려운 언어인데 가장 명확하게 표현하면서도 개성이 분명한 카운터테너 음성이었다. 공연을 보고나서 엑상프로방스 공연 영상을 다시 살펴보니 가수가 닮았다 싶었는데 같은 가수였다. 극장 전속 가수 중에 카운터테너는 없을 테니 객원 가수를 쓰는 것 같다.


타이타니아를 맡은 한국인 소프라노 이하영도 제대로 활약했다. 목소리가 찌르는 듯하게 선명하면서도 비브라토가 심하지 않아 듣기에 편안했다. 처음 등장에서 오베론과 신경전을 펼치는 모습부터 상당한 카리스마를 뿜어내는 가수였다. 프로그램을 보니 시모네 영이 지휘한 2006년 프로덕션에서도 타이타니아를 불렀다. 


플루트 역을 맡은 사샤 에마누엘 크레머Sascha Emanuel Kramer는  목소리나 표현이 아주 훌륭한 가수였다. 가벼우면서도 힘이 있는 목소리, 발음을 잘 활용하는 능력을 갖춰 로게나 미메를 맡으면 정말 잘해낼 것 같은 슈필테너였다. 


그리스인 커플들 모두 뛰어났지만 그 중에서 허마이아 역의 메조 소프라노 도로탸 랑Dorottya Lang이 특출나게 인상적이었다. 라이샌더를 잡아먹을 것 처럼 몰아붙이는 에너지가 발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커튼콜을 위해 퇴장하는 지휘자. 

지휘를 맡은 이브 아벨은 서울시향의 객원 지휘자로도 온 적이 있다. 올해에도 서울시향과 카르미나 부라나를 하기로 예정되어있다. 어느 정도 네임드 지휘자라 기대를 했는데, 꽤 독특한 브리튼을 들려줬다. 이 작품의 편성에 비해 꽤 묵직하고 낭만적으로 끌고 갔다. 내게 이 작품은 차분하고 초연하게 맘 편하게 쭉쭉 이어지는 작품이었는데 아벨은 계속 음악에서 무언가를 끄집어내려고 하는 스타일이었다. 


그런 점에서 아벨의 반주는 1,2막에서보다 3막에서 더 빛을 발했다. 3막 극중극은 이 날의 하이라이트로 브리튼의 재치를 아벨이 가장 잘 살려낸 대목이었다. 


내가 셰익스피어 <한여름밤의 꿈>에 가지고 있는 의문은, 어째서 세 개의 플롯이 함께 진행되어야 하냐는 것이다. 특히 바텀과 그 일당들이 극중극을 준비하는 것이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 좀처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바텀 역시 환상을 경험하긴 하지만, 그리스인 커플의 이야기보다 흥미로운 내용이 아니다. 바텀의 관점에서도 환상을 경험한 것이 그의 극중극 준비와 공연이라는 플롯에 어떤 중요한 의미를 같는 것 같진 않다.


비록 이 연출이 저런 의문을 해결해주진 못 했지만, 이날 브리튼의 3막을 직접 보니 극중극의 새로운 의의를 깨닫을 수 있었다. 오페라의 다른 부분은 모두 이 극중극을 위한 장치에 불과하고 바텀의 극중극이야 말로 이 오페라의 핵심이었다. 처음 봤을 때는 브리튼이 오페라 패러디를 만들어냈구나라고 생각했지만, 그건 과소평가였다. 브리튼은 여기서 오페라의 정수가 담긴 전형을 만들어냈다. 웃기면서 비극적이며 과장돼있지만 진실을 담고 있는 작품이다. 두 연인이 있고, 위협이 있으며, 오해가 있고, 죽음이 있다. 3막에 등장하는 테세우스는 있어보이는말 대잔치를 해대는데, 인상적인 장면 중 하나는 “가장 위대한 연극도 그림자일 뿐이고, 최악이라고 해도 상상력이 곁들여지면 나쁘지 않다”였다. 


아벨은 이 극중극을 진짜 있어보이게 만들었다. 특히 시스비의 죽음에서 터지는 장엄한 선율은 어느 진지한 오페라에서도 맛보기 힘든 카타르시스를 줬다. 아벨은 희열에 찬 표정으로 몸을 휘저었고 정점에서는 자기 바로 뒤에 앉아있던 어린 아이를 한번 바라보며 보란 듯이 클라이막스를 만들어냈다.


가장 행복한 순간은 극중극 이후의 피날레인 베르가마스크였다. 이 음악에는 어떠한 근심도 없는 순수한 환희만 느껴진다. 테세우스가 말한 Simplicity는 간단하고 단순하면서 동시에 천진난만함을 의미한다. 이 베르가마스크는 simplicity의 극치라 할 수 있다. 내가 좋아하는 앞부분은 1분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음악이지만 아벨은 여기에 모든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오페라 극장에서 경험할 수 있는 수 있는 가장 근심없는 즐거움이었다.


반면 그전까지 오페라에서 가장 좋아하던 부분인 마지막 요정 합창 장면은 템포가 너무 빨라 훅 지나가버리는 느낌이어 아쉬웠다.



오케스트라의 실력도 기대했던 대로 뛰어났다. 관악 수석들의 실력이 특히 뛰어났는데, 시스비 장면에서 플루트 소리가 너무 아름다워 눈물이 났다. 이날 극중극이 진지한 오페라 음악으로 들릴 수 있었던 일등공신이라 할 수 있다. 트럼펫 수석은 퍽의 음악을 어렵지 않게 처리해냈다. 타악기 주자가 참 바쁜 곡인데, 수많은 악기를 번갈아가며 연주하느라 매순간 긴장한 표정으로 준비하는 타악기 연주자를 보는 것도 즐거움이었다. 다만 3막 시작의 복잡한 화음에서는 현악기의 화음이 깔끔하지 못해 아쉬웠다.


소년 합창단이 맡는 요정들은 다른 등장인물에 비해도 비중이 작지 않은 역할인데, 아무리 소년합창단 전통이 오래된 유럽이라고 해도 이 작품을 제대로 소화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걸 알았다. 합창으로도 조금 아쉬웠고 조금씩 나오는 솔로파트는 꽤 불안한 편이었다.


앞서 아벨이 공연 중 클라이막스에서 뒤돌아서 바라봤다고 한  아이. 

이날 공연에는 무슨 일인지 객석에도 어린 아이들이 보였다. 내 뒤에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나 될 것 같은 아이가 있었고, 객석 1열 중앙에는 우리 나이로 5살도 안됐을 것 같은 아이가 있었다. 독일에는 미취학 아동의 입장이 금지되지 않았나보다. 하긴 노인들 밖에 없는 오페라 극장이라 학생들한테 제발 공연좀 보러오라고 10유로로 떨이하는데 오겠다는 어린이를 굳이 마다할 이유는 없나보다.


 1층 1열 정중앙에 앉았으니 지휘자와 오케스트라 단원들도 모두 이 귀한 손님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가 없었다. 2부가 시작하기 전 팀파니 주자는 말렛을 입에 물기도 하고 아이를 바라보며 웃으며 팀파니 소리를 들려줬다. 이브 아벨 역시 클라이막스로 향해가는 순간에 이 어린 아이에게 그 카타르시스를 전해주고 싶었나보다.

이날 이 아이는 엄마의 품안에서 3막까지 아무런 사고도 치지 않고 무사히 관람을 마쳤다. 이 모습을 보며 나에게도 꿈이 생겼다. 내 아이도 저렇게 키워야지! 공연장 데려가서 아이가 난동피우면 댇충 등극하는 건가…



오페라 극장을 순례하겠다고 마음 먹었을 때부터 슈타츠오퍼 함부르크는 그 명성과 실력 때문에 꼭 가보고 싶은 곳이었다. 하지만 일정에 맞는 작품이 <한여름밤의 꿈>이라는 걸 알았을 때 솔직히 별로 내키진 않았다. 내가 이 작품을 통해 감동받을 수 있을지 별로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 작품을 보고나서 내가 충만한 마음으로 극장을 빠져나갈 수 있을까 의심했다.


이전에도 한번 이런 경험이 있다. 도쿄에 갔을 때, 단 에팅거가 지휘하는 도쿄필 공연의 프로그램이 로시니의 <작은 장엄 미사>였다. 그 때 당시 나는 오페라를 거의 보지 않았고 종교곡은 더더욱 듣지 않았다. 왜 하필 내가 가는 날 저런 곡을 하나 원망도 조금 했었다. 그러나 한참 예습을 하고 공연장에서 직접 들었을 때 이 작품은 잊을 수 없는 떨림과 충격을 주었다.


여행 일정에 맞춰 가능한 공연을 찾아다니는 건 이렇게 낯선 것과 친숙해지는 과정이다. <한여름밤의 꿈>을 얻은 건 이번 여정의 소중한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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