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스토 클래식에서 C major 할인을 할때 주저없이 질렀다. 드레스덴 젬퍼오퍼는 세계적인 명성에 비해 오페라 영상물 발매가 많은 편은 아니다. 내 기억으로 내가 본 영상물은 파비오 루이지 지휘의 리골레토 뿐이다. 드레스덴에서 베버의 공연이라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난 틸레만을 좋아하지 않는다. 빈필과의 베토벤은 끔찍하다. 그의 바그너도 그닥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계속해서 발매한 슈트라우스 오페라들이 탁월했고 바그너 오페라도 점점 좋은 쪽으로 평가하게 되었다. 특히 2013년 바이로이트 네덜란드인 공연 영상은 아주 좋았고 2014년에 직접 보았을 때도 감탄했다. 반지 다큐 인터뷰도 재밌게 보았고, 항상 오페라에 굉장히 확실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것도 흥미로웠다. 요즘 시대에 그래도 틸레만 만큼 독일 오페라를 해주는 사람이 어디있나. 


마탄의 사수는 좋아하는 작품은 아니다. 흥겨운 노래들이 많이 있지만 리브레토가 전혀 내 스타일이 아니다. 나는 오페라의 내용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눌 때 남자 주인공과 여자 주인공이 처음 마주치는 순간이 극 중에 등장하냐 아니냐를 기준으로 둔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 극 중에 등장하는 경우는 대체로 두 사람의 사랑 자체가 아주 중요한 주제이고, 등장하지 않는다면 둘의 사랑은 극을 진행하기 위한 장치일 뿐이다. 트라비아타와 보엠, 카르멘, 오네긴 등이 전자의 대표적인 예시이고 아이다, 토스카, 마탄의 사수, 일 트로바토레, 리골레토, 명가수, 탄호이저 등이 후자에 해당한다. 물론 예외도 있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마술 피리. 애초에 초상화 하나 보고 사랑에 반한다는 게 말이나 되냐. 이와 비슷하게 애매한 경우로 로엔그린이 있다. 오페라의 세계에선 이처럼 서로 만나기도 전에 사랑에 빠져있는 경우가 많다.


마탄의 사수를 처음 볼 때는 무언가 전형적이지 않은 이 리브레토 때문에 많이 당황했다. 과연 막스와 아가테는 사랑하는 사이가 맞긴 한건가. 둘이 제대로 된 사랑의 듀엣 하나 부르지 않는다. 여기서 막스와 아가테의 사랑은 극의 목적이 아니라 극을 진행시키기 위한 도구다. 마법의 탄환을 만들어야만 하는 개연성을 주기 위한 도구 말이다. 거기다 오페라 끝에 그리스 비극도 아니고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니. 거기다 극의 진행에 크게 개입하지 않는 앤헨의 아리아 비중은 왜 이렇게 높은가. 이런 리브레토 때문에 바이로이트에서 만났던 진성 바그네리안 랄프-요헨 아저씨는 알슈와 바그너의 모든 작품을 사랑하지만 마탄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나처럼 영상물 자체 리뷰는 짧다. 서곡에서 드레스덴 슈타츠카펠레의 저력을 보여준다. 드레스덴 하면 떠오르는 무거운 음색을 기대했는데, 무겁다기 보다는 부드러웠다. 전날 들었던 맥베스에서 루이지가 아주 쥐어짜내는 힘을 보여주었다면 틸레만과 슈타츠카펠레는 상당히 편안한 음색을 들려줬다. 그렇다고 명확하지 않은 건 절대 아니다. 템포가 빨라지는 부분에서 싱코페이션 리듬이 또렷하게 드러나게 연주했고 현악기의 아티큘레이션도 짧고 간명해서 듣기 즐거웠다. 마지막 긴 게네랄 파우제 이후 포르티시모 총주를 예비하는 틸레만의 표정은 압권. 


오페라를 보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녹음이 자연스러웠다는 것이다. 오페라 영상물을 보다보면 메트 처럼 가수의 소리가 너무 크게 잡혀있다든지, 로열 오페라 하우스 처럼 오케스트라만 너무 가까이에서 잡혀있다든지 하는 문제가 생기기 마련인데 이 영상물에서는 가수나 오케스트라나 모두 부담스럽지 않게 녹음되었으며 밸런스도 훌륭하다. 원래 녹음에 굉장히 둔감한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계속 같은 환경에서 듣다보니 녹음 상태에 더 민감해진 것 같다. 


녹음이 자연스럽게 들린 데에는 실제로 연주 자체가 훌륭하기 때문이라는 것도 있을 것이다. 막스의 미하엘 쾨니히는 살짝 불안한 부분도 있었지만 그만하면 훌륭하다. 하딩 지휘의 영화 버전에서도 막스로 나와 얼굴이 익었다. 바이로이트 로엔엔그린 영상물에서 인상깊게 본 게오르크 제펜펠트는 카스파도 상당히 훌륭하다. 알베르트 도멘은 보탄으로선 끔찍하지만 쿠노 정도의 역할이라면 차고 넘친다. 오토카르 역의 아드리안 에뢰드는 2014년 잘츠 장미의 기사와 2015년 도쿄 박쥐에서 실연으로 본적이 있다. 고급스런 소리를 들려주는 바리톤으로 짧은 순간이지만 연기도 훌륭하다. 난 원래 아가테 보다 앤헨의 노래를 더 좋아하는데, 역시 앤헨이 조금 더 뛰어났던 것 같다. 아가테 역의 사라 자쿠비악Sara Jakubiak도 좋은 가수이지만 캐스팅 중 유일하게 독일어 발음이 거슬렸다. 조금 어색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3막 초반부에 können 을 제대로 발음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확신이 들어 검색해보니 미국 출신이었다. 


 사실 음악적으로 훌륭한 캐스팅이니 연출은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통파와 혁신파를 모두 아우르는 아주 모범적인 연출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무대와 복장, 연기가 매우 사실적이다. 이처럼 입체적이고 사실적인 무대는 참으로 오랜만에 보는 것 같다. 이건 오토 솅크나 제피렐리 류의 아름다움만 추구하는 연출과는 다르다. 거기에 무대 전환 역시 상당히 효과적이다.  2막 늑대 계곡 장면 역시 전쟁의 참혹한 결과를 상징화 하는 것으로 표현했다. 3막의 현자와 오토카르의 대화 장면 역시 아주 훌륭하게 처리했다. 그 외에 1막에 카스파가 막스에게 '아가테를 위해 건배!'라고 외치면서 자신을 거부한 아가테에게 복수하겠다는 대사를 추가했다(최소한 내가 본 리브레토와 비교했을때). 3막의 순서도 조금 바꿨는데, 처음에 나오는 다이얼로그를 아가테의 준비 장면 이후로 옮겼으며, 사냥꾼의 합창도 오토카르와 쿠노가 대화하고 나서 부르는것으로 수정했다. 이 합창 장면에서 남자 아이들이 장난감 총을 들고 사냥감으로 분장한 여자 아이들을 맞추고 사냥하는 장면이 나온다. 굉장히 보기 불편한 장면이라 아마 이를 비판하는 것이 뒤이어 질 거라고 예상했는데 역시나였다. 앞으로 이런 사냥 대회를 중지하라는 현자의 말에 오토카르가 불편한 마음을 감추지 않는다. 주위 군중을 의식해서 현자의 말을 받아들이는 것 처럼 보이나 오토카르는 퇴장하기 전에 기어이 장난감 총을 어린 아이에게 쥐어주고 사격을 하게 한다. 갈등이 해결되는 것 같지만 사람들 모두가 영원한 평화를 바라는 것은 아니다.  술집 주인 여자를 자미엘로 칭하는 장면이 있는데 정확히 어떤 의도인지는 한번 더 봐야할 것 같다. 


틸레만의 반주도 훌륭하다. 그냥 훌륭하다라고만 언급하려니까 힘든데, 후기를 쓰자고 영상을 다시 돌려보는 일은 안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영화로 만든 오페라를 싫어하지만 하딩 지휘의 마탄 영화는 상당히 훌륭하다고 생각했는데, 또 하나의 걸작이 나왔다. 마탄 입문용으로도 좋고 마탄을 자주 본 사람도 좋아할 공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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