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저뫼스트의 지휘, 아스믹 그리고리안의 살로메, 그리고 로메오 카스텔루치의 연출 까지, 기대되는 요소들이 모두 한 공연에 모여있다. 

 

카스텔루치의 연출을 잠깐잠깐 클립으로 본 적은 있어도 이렇게 오페라 전막으로 보는 건 처음이었다. 요새 가장 핫한 연출가 중 한 명인데, 위키 기록을 보았을 때 본격적으로 오페라-클래식 연출에 뛰어든 건 2011년 라 모네 파르지팔 때부터인 것 같다. 그 뒤로 나온 작품들은 하나 하나 강렬한 인상을 주며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는데, 그 중에는 광주에서도 수입해왔던 봄의 제전도 있고, 썸네일만 봐도 잊을 수가 없는 마태수난곡 연출도 있다. 유두노출로 페이스북에서 검열당한 바이에른의 탄호이저도 카스텔루치의 작품이고, 파리 오페라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집중 조명되었던 공연도 바로 카스텔루치의 모세와 아론이었다.

 

자기 스타일이 독특한 연출가, 카스토프 처럼 난해한 연극어법을 활용하는 연출가들은 많지만 카스텔루치는 그런 연출가들과도 함께 묶기 어려운 존재다. 

카스텔루치의 연출은 친절함과 정 반대편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놀랍게도 그의 연출이 주는 흡입력은 대단하다. 의도를 파악하거나 말로 설명할 수 없음에도 무대 위에서 일어나는 일의 강렬한 에너지와 긴장감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이는 카스텔루치의 무대가 역동적이거나 파괴적이고 충격적이어서가 아니다. 마치 인간의 근원적인 공포를 자극하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만 같다. 무대에서 펼쳐지는 기이한 광경에 눈을 뗄 수가 없다.

예컨데 카스텔루치는 보통 무대 공연에서 사용하지 않는 것들을 무대 위로 올려놓는다. 대표적으로 동물과 어린이들이다. 무대에서 컨트롤 할 수 없을 것 같은 대상들이 라이브 공연에 올라온다. 예상치 못한 돌발상황이 실제로 펼쳐지진 않지만,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언제라도 일이 잘 못 돌아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갖게 된다. 카스텔루치가 그런 반응을 위해 동물을 무대 위로 올리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그의 연출을 보면 불안함과 긴장이 감돈다는 점이다. 거대한 황소 앞에 나체의 여자가 누워있는 <모세와 아론> 표지 역시 대표적연 예시이다.

이 연출에서도 몇가지 기이한 장면이 있다. 검은 말이 등장하는 건 비교적 약과이다. 극중에서 유일하게 새하얀 살로메의 옷에는 엉덩이 쪽에 빨간 핏자국이 묻어있다. 단순하지만 보는 사람을 불편하게 만든다. 남자들에게 끈적한 눈빛을 받는 이 살로메는 막 초경이 끝난 어린 소녀일 뿐이라는 걸 애써 일깨워준다. 어린 대역이 갑자기 대신 등장하는 것도 같은 연장선일 테다. 요하난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이야기를 들을 때, 요하난을 감싼 검은 원이 점점 무대 뒷편을 잠식해나가는 것 역시 기이한 광경이다. 빛의 영역을 넓히는 것은 쉽고 흔하지만 어둠의 영역이 동그랗게 확장되어가는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나기 어렵다. 마치 심연을 들여다보는 것 같은 두려움을 자아낸다.

카스텔루치가 만들어내는 텐션은 때론 아이러니하다. 살로메의 가장 대표적인 두 장면에서 카스텔루치는 관객의 기대를 배반한다. 일곱 베일의 춤에서 어떤 연출을 보여줄까 긴장시키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뭔가 나오겠지 뭔가 나오겠지 마음 졸이고 있으면 곡이 끝난다. 요하난의 목을 베어 은쟁반에 올리는 마지막 장면도 마찬가지이다. 살로메에게 오는 건 목 없는 요하난. 그리고 살로메는 결국 둥근 원판 함께 하강하며 목만 덩그러니 내놓은 채로 오페라의 끝을 맞이한다. 

 

벨저뫼스트의 지휘는 망설임이 없다. 요새 나오는 벨저뫼스트의 오페라 반주에서는 유독 이런 인상을 많이 받는다. 자신의 해석에 한치의 의심도 없는 자신감. 섬세함과 디테일보다는 확고한 흐름을 만들고 여기에 빈필의 사나운 소리를 활용해 불을 뿜는 듯 독특한 사운드를 보여준다. 

아스믹 그리고리안은 탁월한 테크닉으로 살로메를 무리없이 소화해낸다. 뛰어난 살로메가 무엇인지 아직 판단하기 어렵지만, 그리고리안은 최정상의 자리에 오를만한 자질을 갖춘 가수라는 걸 다시 확신했다. 표현에 있어서 무언가 살짝 더 첨가되어 화룡점정한다면 위대한 가수의 반열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

다른 가수들은 대체로 별로다. 요하난 역의 가보르 브레츠Gábor Bretz는 요하난 다운 포스가 부족하다. 헤로데스 역의 존 다스작John Daszak은 노래를 못 부르는 걸로 헤로데스의 비열함을 표현하는 것만 같다. 줄리앙 프레가르디엥은 아버지 빽으로 잘 나가는 가수라는 인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나라보트를 잘 소화해낸다. 헤로디아스 역의 안나 마리아 키우리Anna Maria Chiuri는 무난한 걸로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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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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